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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신고식 치른 알자스 로렌의 Golfclub Soufflenheim Baden-B

중앙일보

입력

3개월 여의 영국 방랑 골프를 마치고 드디어 유럽 대륙에 상륙했다. 프랑스를 출발점으로 종횡무진하게 될 대륙 원정. 도처에 골프장이 즐비하고 영어를 사용하던 영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 앞섰다. 30여개 국,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이 나라들을 넘나들며 예약도 없이 움직여야 할 막무가내 일정…. 의사소통은 어떨지, 골프장은 잘 찾아다닐 수 있을는지, 자가 운전을 하며 그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그나마 파운드에서 유로로 화폐가 바뀌니 물가나 너무나 싸게 느껴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에서 긴 유학 생활을 한 지인인 ‘파리지엥’이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한국에서 휴가까지 내고 날라와 샤를 드골 공항에서 조우한 파리지엥.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언어 문제로 걱정했던 프랑스, 불어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영어가 통하지 않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의 모든 일정은 그래서 전적으로 파리지엥에게 일임하고 우린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람 고팠던 그간의 회포를 매일 밤 술잔으로 풀어냈다.

파리지엥이 우리를 처음 안내해 간 곳은 프랑스 북동부의 알자스와 로렌 지방.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토양이 기름지고 자원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프랑스와 독일의 분쟁이 빈발했고 영유권이 수시로 바뀌었던 지역. ‘마지막 수업’ 또한 그 분쟁의 역사를 배경으로, 당장 다음 날부터 국어가 바뀌게 된 알자스 로렌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자스-로렌 주민들은 본인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고 나면 국적이 바뀌는 황당함을 수시로 경험해왔다. 독일 통치 시에는 피지배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통치 시에는 독일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게르만들로 이방인 취급되며….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인이든 독일인이든 중요치 않았다. 그저 가만히만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바램 뿐. 현재는 행정구역 상 프랑스에 속하지만 이 곳 사람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아니에요. 다만 알자스 로렌 사람일 뿐이죠." 그래서 파리에 갈 때에도 파리에 간다고 하지 않고 프랑스에 간다고 표현한단다.

그 동안 두 나라간의 오랜 ‘악연’ 때문에 ‘알자스 로렌 사람들’이 느꼈던 국가에 대한 불신과 국적에 대한 허망함이 얼마나 컸을까? 마치 우리나라의 고성이나 속초 아바이 마을 사람들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시로 국적이 바뀐다면 삶의 근거, 그 일상은 아주 위태로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알자스 로렌 지역은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곳이었다. 분쟁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던 프랑스령의 독일 지명 Strasburg, 이름 뿐 만이 아니었다. 스트라스부르의 분위기는 다분히 독일스러웠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유일한 맥주 산지라는 점, 농업 국가 프랑스 내의 중요한 공업 도시라는 점…. 다행히 두 나라간의 오랜 '악연'을 청산하기 위함인지 최근 EU 시대를 맞아 유럽 의회가 스트라스부르에 들어섰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역사의 귀결인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알자스 로렌을 아름다운 관광지로 만들고 있는 ‘작은 베니스’ 꼴마르, 마치 동화 속에서 톡 튀어나온 듯 아기자기한 파스텔 톤의 이 마을에 들어서면 아마 모든 여성 관광객들은 체류기간을 연장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프랑스 치욕의 역사인 마지노선. ‘최후 저지선’ 혹은 ‘인내심의 한계’라는 의미로 쓰이는 ‘마지노선’은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가 독일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양국의 국경을 중심으로 방위선으로 구축한 750km 대규모의 참호라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역사가 요동친 국경 지역 알자스 로렌은 다양한 볼거리로 여행자의 발길을 놓아주지 않는 곳이었다.

물론 이 곳에도 골프장이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25분 거리에 위치한 Golfclub Soufflenheim Baden-Baden. 딱히 골프장 랭킹을 거론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클럽하우스에 비치된 브로셔며 각종 안내문들이 프랑스어와 독일어 버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알자스 로렌의 독특한 지역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클럽하우스 점심 식사로 나온 샌드위치와 곁들여진 와인 한 잔의 이색적인 조화로 프랑스 입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파 72, 총 연장 6,357 m의 코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70%가 평지인 프랑스가 그대로 코스에 반영된 듯 했다. 평평하고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와 프랑스인들의 자유로운 똘레랑스 정신이 그대로 반영된 자유방임형(?)의 잔디 관리로 우린 오랜만에 마음 편한 라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18홀 챔피언십 코스와 9홀, 6홀 숏 코스를 갖춘 총 33개의 그린과 18개의 호수가 라인강 상류 지역의 자연 풍광을 조화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국 골프장, 정통성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과시하던 원조 앞에서 괜시리 조심스럽고 주눅 들던 마음이 깨끗이 사라졌다. 물론 골프 역사야 한국 보다 월등히 앞서겠지만 원조가 아니기는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더욱이 골프장 관리 면에서는 영국도 한국 골프장을 따라오기 힘들다는 확신에 다다른 터라 대륙 골프장 앞에서는 기세등등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화폐 단위가 파운드에서 유로화로 바뀌면서 저렴해진 물가에 쾌재를 불렀고 음식이 맛있어졌다는 점에서 우린 무척이나 고무되었다.

하지만 영국 오른쪽 운전대와 오른 차선에 어느새 적응이 되어 왼쪽 운전대로 돌아온 프랑스에서 몇 번의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고, 골프장에선 yd에서 m로 전환된 야드목을 미처 인식하지 못해 이유없이 비거리가 줄었다는 걱정으로 몇 개의 홀을 흘려 보내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렇게 우린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알자스 로렌에서 대륙 라운드의 첫 신고식을 치렀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