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한·미동맹 간격을 좁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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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는 한.미동맹을 지속하기 원하는가. 원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통일 이후까지 계속할 수 있는 동맹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재천명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재확인한 안보협력 공약에 입각해 양국은 포괄적 동맹을 구축하고 병력 재배치를 합의를 통해 실시해야 할 것이다.

오는 7일 시작될 주한미군 철수협상을 앞두고 한.미동맹의 현주소에 대해 여러 가지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주한미군 중 1개 여단(3600명)을 차출하기로 이미 발표했고, 앞으로도 1만2000명을 더 감축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 돌이킬 수 없는 안보정책 실패

이처럼 미국은 9.11사태 이후의 세계에서 테러와 지역분쟁에 신축성있게 대처하기 위해 해외 주둔군 배치를 재검토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전략변화가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력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이 재고하고 있는 범세계 및 지역전략과 한국이 우선시하는 대북 국지전략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간격은 협상을 통해 좁혀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자기 방안을 통보한다면 동맹의 결속은 약화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왜 필요하며, 왜 그것이 지속해야 하느냐에 대해 양국의 대통령이 새로운 선언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비록 주한미군의 일부를 감축하더라도 미국은 해.공군력을 가시적으로 보강해 전쟁억지력은 유지할 것을 다짐하고, 동시에 양국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데 협력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동선언이 발효한다면 이는 현재 표류하고 있는 동맹에 대해 신뢰를 회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장기적 전략비전에 입각해 양국은 병력 재배치와 감축, 그것을 대치할 수 있는 전력 보강책을 구체적으로 협상해 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 구상에 대해 국회 동의를 구하고 국민적 합의를 조성하는 데 결단성있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새로 구성되는 국회가 여야 합의를 이루어 이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면 초당적 안보외교에 대한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다. 경제정책에서 정부가 실패한다면 시장이 보완할 수 있지만 안보정책의 실패에는 그것을 보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정부는 정책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안보문제에 대한 결정은 특정 정권이 끝난 이후의 역사의 진로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교안보의 대상인 국제환경은 우리의 뜻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친미 또는 반미의 단순논리를 넘어 실제로 무엇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국내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미국이 북한보다 더 위험하다고 나온다면 미국인이 이러한 나라에 미군을 주둔시키려 할 것인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우리의 안보.번영 및 자유를 지키는 데 한.미동맹 이외에 실현 가능한 대안이 없다면 우리는 이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면서 조용히 국력을 키워가는 것이 실질적 자주국방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한.미 안보협력을 건실하게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경제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의 국제금융 구조에서 대미 안보협력 여부가 국가신인도와 이미지를 크게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 국가신인도.이미지 추락 우려

따라서 겉으로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하는 중국도 자국 경제발전을 위해 대미 관계개선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중국 최고지도층은 미국 내에 투영되는 중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장쩌민(江澤民)전 주석 때부터 공산당 정치국에 미국의 의회.학계 및 언론에 대한 연구팀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끝으로 한.미동맹을 재정의함에 있어 현 상호방위조약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과 새로운 내용의 조약에 합의하고 상원이 그것을 비준할 가능성은 결코 크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핵문제는 장기화하고 있고 일본과 중국이 세력경쟁을 재개하고 있는 동북아의 역학관계를 감안할 때 현재의 한.미동맹은 한국이 갖고 있는 최고의 외교 자산이다. 우리는 이를 갱신하는 데 중지를 모으고 가능한 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안병준 日 정책연구대학원 초빙교수 학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