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8. 한국 여성스포츠(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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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윤곡상 시상식 때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함께.

 IOC의 방침은 여성스포츠를 남성스포츠와 동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수뿐 아니라 각종 국제단체에 여성 임원의 진출이 활발하다. IOC에서는 여성 위원은 물론 여성 집행위원, 여성 부위원장도 탄생했다. 승마·하키·배드민턴·스쿼시 등의 국제경기연맹에서도 여성 회장이 나왔다.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에서 여성이 위원장을 맡는 경우도 많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의 조직위원장도 여성이었다.

그러나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여성에 대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체육계 임원 진출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보다 더 많이 국위를 선양했지만 행정적으로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한양순· 윤덕주·신민자·조정순·조경자·권윤방·홍양자·이덕분 등이 그나마 체육회 부회장이나 선수단 부단장을 맡아 한국 여성스포츠를 대표했다.

보조 역할에 그치던 여성 스포츠 지도자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탁구선수 출신인 이에리사가 태릉선수촌장이 됐고, 정현숙과 이덕분은 선수단 단장을 맡아 여성 파워를 과시했다.

한국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자기 희생을 통해 국위 선양을 했지만 그 보상과 영예가 남자들에 비해 미흡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들에게 직업을 주선하고, 생활보장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인 1989년 고(故) 한양순 회장이 여성스포츠회를 맡고 있을 때 IOC 위원인 나는 아호 ‘윤곡’을 따서 ‘윤곡 여성체육대상’을 창설했다. 남자 스타에게 주는 상은 백상스포츠대상 등 몇 개가 있으나 여자 선수만 대상으로 하는 상은 윤곡상이 유일하다. 각 경기단체에서 추천을 받아 선정위원회가 결정하는데 처음에는 한 명만 줬으나 94년 최우수선수상을 신설하는 등 지금은 5개 부문으로 늘어났다. 여성스포츠회가 상패를 주고, 내가 개인적으로 상금과 메달을 수여한다.

2008년이 꼭 20년째였는데 제1회 수상자가 농구의 박신자였으며, 제20회 최우수선수상은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받았다. 20년 동안 윤곡상 수상자는 모두 45명으로 이 중에는 백옥자·이에리사·정현숙·현정화· 정성숙·김경욱·전이경·오영란·이은경·라경민·김계령·윤미진·장미란·남현희·이효정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자 선수가 망라돼 있다. 특히 ‘아시아의 마녀’로 불렸던 포환던지기의 백옥자와 여자농구대표팀의 김계령은 모녀가 차례로 윤곡상을 받았다.

더 많은 여성 스포츠 스타가 더 큰 영광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 지도자가 배출돼 한국의 스포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줬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 그동안 자기 희생으로 나라의 이름을 세계에 빛낸 모든 여자 임원·감독·선수에게 무궁한 경의를 표한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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