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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성공의 세 가지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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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의 외교전문가 대부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양국의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전략적·정치적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민주당 경선에서 미국의 철강·자동차 산업 중심지인 미시간·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미 FTA에 반대했다. 대선 기간 중 그가 보여준 FTA 반대 성향과 현재의 경제위기는 앞으로 한·미 FTA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어렵게 할 수 있다. 다행히 FTA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속 무역협상권한이 만료되기 전에 체결돼 미 의회는 언제든지 비준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본궤도에 올려 놓느냐다. 세 가지 변수가 있다.

먼저 오바마가 FTA 반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다. 반대자들은 대부분 노조, 특히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이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는 무역자유화에 반대한다. 자동차 빅3 중, 포드 자동차의 반대가 특히 격렬하다. 오바마가 노조의 지지를 얻으려면 노조에 회유책을 써야 한다. 회유책의 하나로 노조 결성 조건을 완화하는 법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부정적이다.

대신 자동차 업체 근로자에게 연 650억 달러(약 85조원) 규모의 의료 보장 혜택을 주는 계획이 부상하고 있다. 이럴 경우 자동차 업체도 과도한 의료 보장 부담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한·미 FTA 성사를 위한 노조 회유책이 무엇이든 구체화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둘째, 누가 한·미 FTA를 성사시키느냐다. 부시 정부에서 한·미 FTA의 주축은 로버트 포트먼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다. 그의 후임인 수전 슈워브는 이를 더욱 진전시켰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 등은 의회 설득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한·미 관계 개선과 동아시아 전략 측면에서 한·미 FTA를 적극 지지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의 USTR 대표로 내정된 론 커크 전 댈러스 시장은 “자유무역 협정을 위해 할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 USTR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는 한·미 FTA를 주도할 만한 사람이다. 대선에서 한·미 FTA를 반대한 인물이 이를 주도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강력한 국무장관으로 외교 목표에 집중할 것이다. 힐러리는 또 국무부에 1급 아시아 전문가들을 불러모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도 한·미 FTA 핵심 추진세력이 될 수 있다. 누가 되든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행정부와 의회에서 한·미 FTA를 밀어붙여야 한다.

셋째,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와 한·미 FTA를 어떻게 다루느냐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가 한·미 FTA를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가 준비도 되기 전에 이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둘의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 2001년 3월 한·미 정상회담의 실패가 교훈이 될 것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초여서 준비가 안 된 부시 대통령에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계승하라고 강하게 밀어붙이다 회담을 실패로 이끌었다. 정상회담은 서울과 워싱턴 간, 백악관과 국무부 간 대북 정책의 차이를 노출했으며, 이는 수년간 양국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이 올 상반기 중 오바마와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건 이해가 간다. 문제는 오바마가 한·미 FTA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통령이 한국인의 기대를 잘 다룰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정치적 타이밍과 내용을 포함하는 민감한 문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미 정상의 만남을 발표하기 전에 이런 점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마이클 그린 미 조지타운대 교수 전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태 선임보좌관

정리=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