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1백세 시할머니.4자녀 남편없이 홀몸으로 키워온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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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죽으려야 죽을 시간도 없었어요.” 치매에 걸린 1백세 시할머니를 모시고 4자녀를 남편없이 홀몸으로 키워온 장한 어머니. 전주시완산구효자동 김채남(金採男.49)씨.삼천동 우전마을에서 태어난 金씨는 25세때 소병권(蘇炳權)씨와 결혼,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살았다.재산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고,남편이 자신만을 알고 사랑해줘 시집살이가 어렵고 힘든줄 몰랐다.

그러나 월남전 참전용사로 고엽제 후유증을 앓던 남편이 89년 간암판정을 받고 넉달만에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에 어찌할바를 몰랐지만 슬픔에 잠길 겨를이 없었다.남겨진 것이라곤 논 네마지기에 92세의 시할머니와 74세의 시어머니,어린 자녀등 일곱식구.당장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농사는 여력이 없어 아예 포기하고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겨우겨우 생활은 꾸려나갔지만 아이들 수업료 내는 날이면 돈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야만 했다.수술비 걱정에 맹장이 아픈걸 꾹꾹 참다가 복막염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뇨로 고생하던 시어머니는 82세로 돌아가시고,고령의 시할머니가 3년전부터 치매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金씨는 직장 나가랴,간병하랴 눈붙일 겨를도 없을만큼 바빠졌다.

공고를 졸업한 큰딸은 현대전자에,올해 전문대를 마친 둘째딸은 여행사에,큰아들은 고교 2학년이다.

“이제부터 얼굴 좀 펴세요.” 초등학교 철부지때 아버지를 떠나보낸 막내아들은 중3이 되어 올해 金씨의 생일엔 주름펴지는 화장품을 선물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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