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렴정치회고록>7.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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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청와대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대통령이란 큰 나무의 그늘에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지 그 그늘을 벗어나 양지로 나와 존재를 과시하면 안된다고 나는 믿는다.그리고 이것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소신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비서실장을 맡은 9년3개월간 나는 이 원칙이 지켜졌다고 생각한다.69년 10월 취임식에서 나는 이렇게 당부했다.

“국민이 청와대를 쳐다볼 때 각하 내외만 보여야지 비서관들이 보여선 안됩니다.나를 포함해 우리 비서관들은 뒤에서 소리없이 각하 내외를 보필하고 각하와 행정부간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할 것입니다.” 나는 비서관(1~3급).행정관(4~5급)들이 지켜야할 지침도 몇가지 얘기했다.“나도 물론 하지 않겠지만 비서실 사람들은 기자회견이나 강연같은 것에 임해선 안됩니다.명함 만드는 일도 안되지요.청와대 마크가 새겨진 봉투를 바깥에 갖고 나가는 것도 삼가 주세요.이런 것을 어기면 나하고 같이 일하지 못하는 걸로 알아주십시오.” 내가 명함과 봉투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국민은 청와대를 권력기관이라고 인식한다.그래서 비서관등이 음식점이나 술집 또는 교제석상에서 청와대라는 낱말이 새겨진 명함을 돌리면 명함을 받은 사람이 이를 엉뚱한 곳에 이용할 우려가 많은 것이다.

봉투도 마찬가지다.청와대용을 표시한 용지나 봉투가 많이 유통되면 될수록 불미스런 일도 늘고 적절한 단속도 어려워지는 것이다.나는 특히 직원들이 퇴근할 때 청와대봉투를 들고 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소위 가신(家臣)이라는 그룹은 비서실에 없었다.전에는 朴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었던 비서실 직원이 두명 있었다.대구사범학교 동창생 한명과 朴대통령이 교사생활을 했던 문경초등학교의 제자 한명이다.내가 들어가기전 그들은 청와대를 떠났다.

71년 7월 비서실 축소개편 이후 78년 12월 내가 사임할 때까지 朴대통령과 지연.학연.군연(軍緣)으로 연결된 청와대 부하는 거의 없었다.朴대통령의 사단장시절 헌병부장을 지낸 김시진(金詩珍)민정수석비서관과 朴대통령이 군에 있을 때 당번병과 운전병을 하던 옛부하가 부속실의 부관과 운전기사로 일했을 뿐이다.

나에게는 정계.재계.관계의 고위인사들로부터“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는 초대가 많이 들어왔다.나는 외부에서 사람들과 회동하는 것을 금기(禁忌)로 여겼다.나는 공식행사가 없는한 9년여동안 점심은 청와대 사무실,저녁은 집에서 들었다.

비서실장이 되자마자 집권 공화당의 고위인사 몇 분으로부터 축하저녁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특별한 생각없이 나는 몇차례 응했다.그러자“청와대의 신임실장이 누구누구하고 저녁을 먹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공화당의 당무위원이나 혁명주체 출신 중진의원들도 줄을 이어 나에게 식사를 같이하자고 요청해왔다.

나는 아차 싶었다.이런 식으로 하다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고 여러가지 잡음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후로는 일체의 초청을 거절했던 것이다.골프를 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재임기간 비서관 관리문제로 朴대통령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딱 한번 있었다.그것은 병역과 관련된 일이었다.

朴대통령은 72년 이후 세차례 정도 부처의 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의 병역실태를 조사했다.청와대비서관도 대상에 포함됐다.조사결과 비서관 1명이 정식 병역이 아니라 6.25때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한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총무비서실에서 근무하던 2급이었다.

그는 나에게 의용군으로 참전한 정황을 설명하고 사진까지 제시했다.그때의 병역검사 기준에 따르면 정확한 증거가 있는 의용군 참전은 병역을 마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어서 나는 불문에 부쳤다.

朴대통령은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 나를 불러 그 사람에 대해 물었다.나는“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돼 그대로 근무하도록 했습니다”라고 보고했다.朴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요새 학도의용군을 다녀왔다는 사람이 많은데 그 진상에 대해 말들이 많아요.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리고 적어도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병역관계에 대해 떳떳해야 합니다.”그 비서관은 결국 그만둬야 했다.

내가 재임하던 9년3개월간 청와대비서관이 이권에 개입해 검찰수사를 받거나 문책돼 사임한 일은 한 건도 없었다.나와 같이 근무했던 수석과 비서관중에서 朴대통령때부터 김영삼(金泳三)대통령정부에 이르기까지 장관에 오른 사람이 모두 24명이다.朴대통령의 비서실이 인재의 보고(寶庫)였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다.나는 그들과 같이 일한 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리=김진 기자

<사진설명>

박정희대통령이 76년 5월26일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마친 뒤 진열된 수출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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