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파리서 영화경제학 배워 온 김아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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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프랑스 파리,젊은이들로 가득찬 대학가 생 미셸 거리.그 뒷골목에는 흘러간 영화나 예술영화만 상영하는 소극장들이 줄지어 있다.이탈리아 파졸리니 감독의 59년도 데뷔영화에서 이름을 딴 ‘아카토네’도 그중 하나다.

1백석 남짓한 이 극장의 객석은 웬만하면 절반이상 차지 않는다.영화가 끝나고 제작스태프들의 이름이 적힌 자막이 오른다.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가운데 수첩을 꺼내들고 자막 내용을 부지런히 적고 있는 한 동양여자가 눈길을 끈다. 그는 파리 제1대학에서 영화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김아자(30·사진)씨.“모든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영화제작자들이 어떤 식으로 돈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조직했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정보원입니다. 영화제작과 영화산업의 구조를 파악하는 1차자료들이죠.”

한국에서의 대학시절 영화를 좋아하는 다른 이들이 빼어난 연기력을 보유한 배우나 감각있는 감독,치밀한 평론가를 짝사랑하고 있을 때 그는 제작자들의 경력을 줄줄 꿰고 다녔다.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보다,형 고흐의 예술혼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그의 동생 테오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영화로 치면 테오의 역할이 바로 제작자다.

영화 열병을 앓다 3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났다.새롭고 재미있으며 한국영화 제작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겠다는 신념 하나만 갖고.이것이 그를 생소한 영화경제학의 길로 이끌었다.

“영화경제학은 영화가 하나의 산업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재정마련·제작·배급·상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영향을 주는 제도와 법률·산업구조·마케팅등을 살펴보는 학문이죠.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던 그가 석·박사과정 3년간의 공부를 끝내고 지난해 연말 일단 한국으로 돌아왔다. 배운 것을 활용해 국제합작을 주도하는 ‘국제제작자’가 되겠다며.

“현재 선진국의 영화제작은 여러나라가 합작하고 투자단계에서부터 돈 뿐만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내용 속에 융합해 나가는 추세입니다.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국제 제작자들이죠.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위해선 이같은 작업이 더 치열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복합금속이 여러 재료의 장점을 고루 지니면서 더욱 강하고 쓸모있는 신소재가 되듯 영화도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나 섞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겨레 문화센터의 ‘영화강좌’강의를 맡아 영화경제학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한편 합작영화를 만드는 영화사의 해외 업무를 거들며 국제제작자의 길을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같은 영화일이라도 남들이 하던 일은 따분합니다. 새로운 일을 신명나게 하고 싶어요.” 아직 경험도 없고 의지만 충만한 이 젊은이에게 한국 영화계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런 당돌함과 참신함 때문일 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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