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빚덩이 기업이 듣는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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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누가 또는 무엇이 한국인을 불행에 빠뜨리는가.이런 여론조사가 해마다 실시됐다면 1981년도에는 2명의 육군 소장이 뽑혔을 것이다.그들이 저지른 12.12,5.18은 당시에는 구국행위로 미화됐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내란.반란행위로 단죄됐기 때문이다.내란.반란의 수괴(首魁)를 통치자로 모신 한국인의 삶이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러면 1997년에는 누가 뽑힐까.다음 대화를 들으면'빚덩이 기업'이 가장 유력한 후보일 것같다.

“한보의 부채는 4조7천억원,공장이 완공돼도 해마다 이자만 5천억원씩 나간다는구먼.그러니 예상이익 1천8백억원을 다 빚갚는데 써도 모자랄 판이야.”“한보가 부도날 당시 자기자본은 2천억원 남짓에 불과하고 부채비율은 1천8백%가 넘었어.우리나라 금리가 선진국의 2~3배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빚더미 위에서는 수지맞는 장사를 할 수 없지.”“그렇게 무리한 사업을 벌이다 부도를 내고,사방에 뿌린 뇌물 때문에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국민을 허탈과 분노에 빠지게 했으니 우선순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한보 말고도 빚더미 위에 오른 기업은 많아.부채비율이 3천%를 넘은 삼미는 이미 부도를 냈고,이번에 문제가 된 진로도 많았을 때는 2천4백%까지 올라갔다잖나.빚많은 기업은 제발 정신 좀 차려 국민을 당황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어.”“경제 교과서엔 부채비율이 2백~2백50%일때가 적정수준이라고 하지.그러나 우리나라 30대 기업집단의 평균 부채비율은 95년 기준으로 3백80%를 넘고 있어 다른 선진국의 2~5배에 이른다네.부채비율을 낮추려면 자기자본을 늘리든가 빚을 쓰지 말아야 하는데 확장경영만 추구하는 한국기업들은 이익이 생기면 다른 기업을 일으키는데 쓰고 빚은 빚대로 얻지.이제 기업의 인수및 합병(M&A)이 본격화하면 자기자본이 충실하지 못한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걸세.”“엊그제 자구노력을 공표한 쌍용의 경우 자동차를 살리기 위해 고육지책을 쓴 것이지.자동차는 부채비율이 한때 1만%를 넘었다가 지금은 2천6백%로 떨어졌다는군.”“정부조차 부실기업의 부도는 불가피하고,그런 기업이 쓰러져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빚많은 기업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빚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가발에서도 머리카락이 빠진다는데.”“아냐 정부가 말을 바꾸었어.금융권을 내리눌러 부도방지협약을 맺게 하고,부도난 어음의 결제를 사실상 미루기로 했어.대형도산과 연쇄부도를 겁낸 정부 덕에 빚덩이 기업은 한숨 돌릴 여유를 얻은거지.그러나 경영권 포기각서를 쓰라는 식의 수모(受侮)는 있는 모양이더군.”“그러니 저녁을 굶고 자는 것이 빚을 걸머지고 아침에 일어 나는 것 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 “일본의 어느 유명한 경영인은 경쟁자보다 '크게'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먼저'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빚을 갚는 것은 수입(收入)의 문제가 아니라 인품의 문제라는 충고도 있어.”“그건 그렇고,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장본인이 돈받은 정치인이나 대통령 아들이 아니고 빚덩이 기업인 것은 확실하지?” 김성호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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