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人들 他地로 고국으로 발길 돌려 - LA폭동 5주년 맞는 코리아타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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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폭동이 오는 29일로 5년째를 맞는다.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 대사건은 이제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애꿎게 큰 피해를 본 한인교포들 역시 당시의 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 옛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그렇지만 LA폭동은 완전히 끝나 버린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경제적.인종적 리스트럭처링이 한창인 미국사회의 모순과 갈등요인을 그대로 안은 채 또 한차례 분출을 노리는 휴화산일 뿐이다.LA폭동 이후 한인사회의 현재와 한인들이 그리는 앞날을 현지 르포를 중심으로 집중점검한다. [편집자]

LA 폭동의 진원지였던 사우스센트럴 지역 한 모퉁이에 있는'원스톱 마트'.폭동 당시 바로 이곳에서 주류판매점을 운영했던 김재열(金在烈.53)씨 부부가 잿더미 위에 다시 세운 식료품점이다.그들은 피땀흘려 모은 재산을 졸지에 날린뒤 3년간의 유랑생활 끝에 다시 돌아왔다.

“가게를 새로 열면서 그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단골들에게 농담도 걸고 호들갑도 떨었어요.”그 때문인지 장사는 어느정도 자리잡기 시작했다.金씨의 재기담은 영국 BBC-TV에 의해 다큐멘터리로 꾸며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타이틀로 전세계에 방송될 예정이다.

LA폭동 이후 만 5년.이처럼 코리아타운의 겉모습은 더이상 '잿더미'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스센트럴 지역의 한인업소는 폭동 이전에 비해 15%정도만 원상복귀됐다.

흑인지역에 환멸을 느껴 아예 떠나버린 업소 주인들이 많고,주류판매점의 경우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시(市)에서 못하게 막아 업종을 변경하기도 했다.일반교민들도 애틀랜타.시애틀 등지로 떠나거나 한국으로 역이민해 상권 자체가 약해졌다.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조차 씀씀이를 줄여 경기는 더욱 썰렁해졌다.

국내외에서 거둔 지원성금(약 1천만달러)의 분배과정에서 빚어졌던 말썽과 잡음도 아직 교민사회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성금 얘기만 나오면 피해교민들은 금방“몇몇이 다 해먹었다”“누구누구가 죽일 X들”등 입이 험악해진다.

폭동 이후 LA총영사관과 한인회.식품상연합회등 한인단체들은 여러 통로로 한.흑 친선도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흑인 대학생이나 교사.목사를 한국으로 초청,연수시키고 지역주민을 위한 성금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흑인이나 히스패닉을 깔보는등의'바탕'이 변하지 않는 한 무슨 큰 효과가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많다.한인회의 한 관계자도“앞으로 신경써야 할 과제는 한.히스패닉간 분쟁 예방”이라고 강조한다.

업주와 고객의 관계인 한.흑문제와 달리 이는 사용자와 피사용자 관계여서 자칫하면 원한관계로 발전할 위험마저 있다는 설명이다. [LA지사=최천식 기자]

<사진설명>

92년4월 LA폭동 당시 한인업소들은 흑인 폭도들의 집중적인 습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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