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 다시 써야 할 大발견 - 설공찬傳 문학적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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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설공찬전'은 중종때 전국적으로 수거해 불태워졌을 뿐 아니라 숨기고 있다가 발각될 경우 처벌하는등 조선조 필화사건을 촉발한 유일한 소설로 기록되고 있다.작가인 채수 자신은 중종의 배려로 참수형만은 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 소설이 남의 일기의 접은 뒷면에 은밀히 실려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당시 상황 때문인 것으로 관련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최초의 한글소설'설공찬전'의 발견을 두고 학계에서는'해방 이후 최대의 문학사적 사건'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홍길동전'이 1618년에 지어진 것도 추정일 뿐이며,현재 전해오는 한글본은 18세기 후반 구전소설을 상업적으로 판각한 것.이와 달리'설공찬전'은 저자와 저작연대.저작배경.저작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더욱 가치있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 관련 학자들은 이 소설이 한문본의 번역이라 하더라도 한글소설로 분류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홍길동전'뿐 아니라 초기의 한글소설이 대부분 번역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 소설은 많은 민간에 읽히기 위해 한문본과 동시에 한글본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한글소설보다 돋보이는 지위에 있다는 평.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소설적 구성과 작품성이다.이 소설은 초기의 한글소설로'홍길동전'이나'사씨남정기'보다 갈등의 구조나 짜임새등 소설적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실존인물과 가공인물을 적절히 배치해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는등 작품성은 결코 못하지 않다는 것.'설공찬전'에 대한 연구저서와 수편의 논문을 낸 서울대 朴희병교수(국문학)는 이 작품을 조선 초기 소설형식인 전기(傳奇)소설중 하나라고 분석한다.귀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기소설은 이후'홍길동전'같은 영웅소설 형태로 계승되었다는 것.'설공찬전'의 등장으로 16세기초에 이미 한글소설이 존재했다는 학계 일각의 막연했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됐다.

'저승'을 설정해 현실정치를 비판한다는 점에서'소설의 사회적 기능과 위상'을 파악하는 출발점이 되는 자료로 평가한 홍익대 朴일용교수(국문학)는 중종 전후의 정치적 상황은 물론 사회상황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의 또한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4천여자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다.그러나 학자들은 그 시기의 소설은 짧았으며,'홍길동전'처럼 구전되면서 점차 살을 붙여 분량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李복규 교수는 오는 5월10일 오후2시 대전 한남대에서'설공찬전'연구내용을 발표하고'사학연구'53호는 원문을 소개하며 국편(國編)은'목재일기'를 내년말까지 사료총서로 펴낼 예정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사진설명>

일기표지.첫장

중종때 승정원 승지를 지낸 이문건(李文楗)이 32년간 쓴 생활일기인'묵재일기'중'설공찬전'이 실려있는 일기의 첫장과 일기의 표지.한지로 편책된 일기 낱장의 속면마다에 필사된'설공찬전'은 뜯지 않고는 제대로 읽을 수 없도록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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