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잠 깨어난 일본] 8. "한·일 FTA 협상 준비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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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일본은 한국의 걸음 속도(pace)를 존중할 것이다."

일본은 언제라도 협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일본의 국내 의견교환 체제는 '끊임없는 조정'(constant adjustment)의 과정이다. 때로는 입장 표명이 늦어 보일 수 있지만 입장을 내놓을 때면 그것은 국내에서 조정이 끝난 것으로 보면 된다."(외무성 관료)

FTA에 관한 일본의 대응은 가히 '거국적'이다. 정부 내 실무 협의는 외무성과 경제산업성.농림수산성.재무성 등 4개 부처가 참여한다. 장관은 물론 차관.국장.과장급까지 부처 간에 상시적인 종횡(縱橫) 협의가 이뤄진다. 정부 협의를 주도하는 경제산업성에는 FTA 관련 일을 전담하는 80여명의 직원이 경제산업성 본관 15층에 모여 있다.

관.민 간 협의도 종횡식 협의 체제가 상시화돼 있다. 제조업의 경우 경제산업성 제조산업국이 자동차.철강협회 등과 거의 매일 접촉한다. 게이단렌(經團連)의 한.일 FTA 담당자는 "정부와 업계 간 의사소통은 매우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협상의 모든 과정에 걸쳐 의견을 개진한다. 한.일 FTA에 대해선 이미 협회별로 주요 기업 100개를 대상으로 두 차례 설문조사를 했다. 업계의 역할은 협상이 본격화되면 더욱 활발해진다. 부문별 개방 정도와 스케줄을 정하는 데 사실상 업계가 주도권을 행사한다.

일본에서 한.일 FTA를 반대하는 쪽은 농수산 부문이다. 그러나 이들도 농산물 수출국인 멕시코와의 FTA를 체결하고 나서는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농민들이 시장개방을 대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관세 보호를 계속해 달라기보다 보조금 등 정부의 지원을 원하고 있다."(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교수)

끊임없는 국내 의견조정 때문인지 누구를 만나도 한.일 FTA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한다. 구와하라 사토시 경제산업성 통산정책국 심의관은 "한국과의 FTA는 일본이 맺는 최초의 선진국과의 FTA이므로 모범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FTA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은 FTA보다 공정거래 정책, 정부조달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경제 파트너십 협정(EPA)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인들은 "한.일 FTA는 더 넓은 FTA의 첫걸음"이라는 점에도 입을 모은다.

이토 교수는 "한국과의 FTA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한국과의 FTA를 추진하지만 중기적으로는 한.중.일 3국을 엮은 동북아 FTA, 나아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목표라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 한.일 FTA에 있어 공은 한국으로 넘어온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특별취재팀 =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양재찬.신혜경 전문기자, 이종태.김광기 기자,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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