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형수 젖으로 유년의 허기 채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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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견 시인 김종철(62 )씨가 새해 첫 머리에 일곱 번째 시집 『못의 귀향』(시학)을 펴냈다.

2005년 친형인 김종해(68) 시인과 함께 어머니 15주기를 기념한 시선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를 출간한 후 4년 만이다.

김씨의 작품들은 “삶의 본원적인 슬픔과 쓸쓸함” “사회와 문명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문학평론가 김재홍). 종교(가톨릭)는 유혹과 좌절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개인을 다잡는 나침반 역으로 언급되곤 했다. 1992년 김씨는 연작시집인 네 번째 시집 『못에 관한 명상』에서 자신의 시 세계를 압축한 화두로 ‘못’을 제시했다. 스스로 ‘못의 사제(司祭)’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때문에 이번 시집의 유력한 감상법 중 하나는 못에 주목하는 것이다. 못의 정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실패한 못의 혁명’에서다.

시인은 민중가 한 가락 못 불렀을 정도로 현실참여적이지 못했으나 “젊어서/주체할 수 없이 너무 푸르고 슬퍼서” 음주 후 고성방가·방뇨한 죄로 구치소 신세를 진 적은 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못은 인생 또는 삶의 동의어일 게다. 그의 시 세계 속에서는 소나기도 “못소나기처럼” 내린다(‘장닭도 때로는 추억이다’).

하지만 정작 눈길을 잡아끄는 시편들은 못보다 ‘귀향’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김씨는 부산 고향 마을의 옛 이름을 딴 스무 편의 초또마을 연작시에서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대 끊길 위기에 처한 건넛마을 안동댁을 위해 하룻밤 남편을 빌려준 어머니, 해방 직후 적산가옥 안방 한 가운데 회 칼을 꽂아 집을 차지해 버린 외삼촌, 자신이 마마손님(천연두)을 물리친 사연 같은 것들이다. 옛 얘기 들려주 듯 편안한 말투 속에 절로 미소짓게 하는 절묘한 비유들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젖꼭지’는 몇 번 읽어도 재미 있다. 젖 나오지 않는 어머니의 빈 젖이라도 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배고팠던 시절, 막 출산한 큰형수의 젖으로 배를 채웠다는 웃지 못할 얘기다. 시인은 숨을 골라야 했을 만큼 게걸스럽게 형수의 젖을 먹었노라고 소개한 뒤 천연덕스럽게 노래한다.

“숨이 턱까지 차야 볼 수 있는 꽃!/간밤에도 밤도둑처럼 아내의/앞섶을 풀다가 주책없다 야단맞았습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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