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외인부대가 잘나가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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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평소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여기에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과 SK문화가 배어 있다. 개별적으로는 이질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론 함께 뛰는 기업문화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런 경영철학과 기업문화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간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들이 약진한 것이다.

SK그룹은 지난해 말 핵심 계열사인 SK에너지 총괄대표로 구자영 사장을 임명했다. 구 사장은 포스코 상무, 엑손모빌을 거쳐 지난해 1월 SK에너지에 영입됐다. 그는 이 회사의 4개 CIC(회사 내 회사) 중 하나인 기획 및 연구개발 부문 사장으로 재직한 지 채 1년이 안 돼 총괄 사장이 됐다.

또 최 회장은 윤진원 SK C&C 윤리경영실장(부사장급)을 새 비서실장에 앉혔다. 윤 실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으로 지난해 2월 SK에 둥지를 튼 인물이다. 회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필해야 하는 자리에 영입 1년도 안 된 인사가 배치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의 자리 배정을 놓고 그룹 안팎에서는 “SK만의 기업문화가 뿌리내리지 않고선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SK의 기업문화는 한마디로 ‘SKMS(SK Management System)’로 대변된다. 2004년 10월 고 최종현 회장의 ‘사람 중심 가치’를 발전시켜 최 회장이 보완해 만든 개념이다. 이윤 극대화였던 경영방침을 사원·기업·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윤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행복 나누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최 회장은 “기업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며 “SKMS정신에 동의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언제나 환영한다”고 말한 바 있다.

SK에 근무하기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KTB네트워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권오용 브랜드관리실장(부사장)도 “이번 인사는 SKMS를 공유하고, 이미 다른 파트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들에게 문호를 더욱 개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인사는 임원뿐만이 아니다. SK는 그룹 전체적으로 직원을 뽑을 때 다른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직 채용 비율을 60% 이상 높였다. 2007년 1800명을 새로 뽑았는데, 이 중 1100명이 경력직이었다. 지난해에 선발한 3000명 중에서는 1800명이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부터 SK텔레콤·SK에너지·SK㈜ 등 주요 계열사에서 직급을 없애고 실장·팀장·메니저로만 부르는 업무 방식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주대 조영호(경영학부) 교수는 “SK의 강점인 개방정신이 돋보이는 인사정책”이라며 “기업 내부 인사들에게 국제 경제상황의 변화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도 깔려 있다”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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