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논객이라기보단 타협 모르는 신앙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5호 31면

“박 신부님이 강직한 분이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2003년 서강대에서 개최한 한국철학자대회 만찬장에서 송두율 교수가 박홍 신부에게 한 말이다. 송 교수는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가르친다. 그는 2003년 한국에 귀국해 북한의 조선노동당 당원이란 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바 있다. 일반인들에게 박홍 신부는 두 차례 발언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4년 서강대 총장 시절, 주사파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7월 18일 청와대에서 있은 대학총장 오찬 모임에서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있고, 그 뒤에 북한의 사노청과 김정일이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91년 5월에는 한 주일간 3명의 대학생이 잇따라 분신하자 “우리 사회에 젊은이들의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일갈했다.

내가 만난 박홍 신부

글을 쓰는 게 직업인 기자는 우선 박 신부의 화법이 지니는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우선 박 신부의 말에는 아슬아슬함에서 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도올 김용옥은 위태위태한 사람이다”는 발언을 비롯해 박 신부의 그야말로 ‘위태위태한’ 발언은 계속돼 왔다. “부처 믿으면 지옥 간다고 떠드는데 이건 무식해서 하는 소리다” “북한은 사상적으로 미쳤고 남한은 썩었다” “한반도에서 저질 자본주의와 저질 공산주의가 만나고 있다” 등등.

박 신부는 “공산주의는 꿀을 바른 독”이라고 표현한다.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한 답으로 나온 공산주의는 문제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공산주의는 인간을 하향 평준화시킨다.” 이처럼 그의 화법에는 뇌리에 남는 쉬운 이미지가 있다. 2004년 사립학교법 개정안 논란 당시에는 박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발에 무좀이 있으면 치료를 해야지 무좀이 있다고 해서 다리를 잘라서야 되겠나. 모든 사학을 도둑놈 집단으로 몰고 모든 권한을 뺏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박 신부는 주체사상에 반대한다. 그의 반공은 가톨릭 신앙의 입장에서 나오는 반공이다. 그는 또한 신앙인의 입장에서 자살과 전쟁에 반대한다. 그는 말한다. “병자를 사랑해야 하지만 균은 미워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도 인간으로 대해야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술책과 음모를 알고 대응해야 한다.” 그의 신앙적 반공이나 자살 반대는 얄궂게도 정치권의 이해와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소신 발언’을 해 온 것이 아니라 ‘신앙 발언’을 해 왔다. 박 신부의 관심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며 가치의 문제다. 사실 그는 ‘보수 논객’이라면 해서는 안 될 발언도 많이 했다. 그는 말한다.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보다 덜 나쁘지만 자본주의 역시 답은 아니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나와야 한다. 우리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을 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세계화는 희망과 갈등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의 금융위기는 올 수밖에 없는 세계화의 추한 모습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북한은 투명성 있게 도와줘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껴안아야 할 우리의 민족 아닌가. 목욕물 버리면서 애까지 버릴 수는 없다.”

송두율 교수의 말처럼 기자가 두 시간 동안 만나 인터뷰한 박 신부는 강직한 사람이었으며 타협을 모르는 신앙인이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