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독재자는 대중의 불안심리를 먹고 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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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찰리 채플린이 히틀러를 풍자해 만든 영화 ‘위대한 독재자’(1940) .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국가 토매니아는 독일을, 유태인을 탄압하는 독재자 ‘힌켈’은 히틀러를 상징한다.

독재자들
리처드 오버리 지음, 조행복 옮김
교양인, 1004쪽, 4만5000원

수천만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독재체제를 이끈 두 인물, 히틀러와 스탈린은 서로 최대의 적수이기도 했다. 이들의 독재체제가 어떠한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됐고 개인 숭배, 대중 선동, 국가 테러, 총력전, 강제수용소 등 공통적 측면들은 어떤 양상이었을까? 영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는 하나의 비교사이자 정치적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질문에 답한다.

먼저 눈길 끄는 대목은 전쟁의 승패를 가른 핵심 요인이다. 저자는 두 독재자들이 전쟁 수행 노력에서 보인 지도력의 차이, 즉 최고사령관의 책무를 이행한 방식의 차이를 지적한다. 스탈린은 전쟁이 진행되면서 군사전략가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직업 군인들의 조언에 더 많이 귀 기울였다. 반면 히틀러는 자신의 전략적 역량에 대한 확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스탈린에게 최고명령권이란 정치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던 데 비해, 히틀러에게는 군 지도자라는 소명 자체가 독재 체제의 핵심 목표였다.

그들의 철저한 개인 지배는 대중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다. 저자는 지도자와 대중을 결합시키고 대중 사이로 파고들어 감시하고 독려하고 위압했던 대중 정당의 활동을 강조한다. 물론 차이는 있다. 스탈린은 집권당의 고참 당원이었지만 히틀러는 권력 장악의 전망이 불투명한 정당을 이끌어야 했다. 이에 따라 스탈린은 정치적 이익이나 야심을 뒤로하고 당을 전면에 내세우는 유일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고, 히틀러는 전적으로 자신이 독일의 구세주라는 생각에 따라 행동했다.

이러한 차이는 통치에 대한 일종의 자의식 차이로도 이어졌다. 스탈린은 1931년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난 독재자가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명령을 내릴 수 없습니다. 당이 결정을 내리면 당이 선택한 기관인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에서 집행합니다.” 이에 비해 히틀러는 집단지도체제의 겉치레를 애당초 포기하고 ‘지도자의 명령’을 특별한 범주의 최고 법률로 삼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국민에게 받은 열광적 지지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들은 오랜 정치적 불안정, 내전, 폭력, 궁핍의 시기를 보내면서 극도로 불안정해진 국민의 심리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정상적인 정치인’들은 무능하거나 배신자이거나 패배자라는 인식이 독재자에 대한 대중의 동의와 열광, 저자의 표현대로 ‘필연적인 허구’를 낳았다. 여기에 나라 전체를 동지와 적으로 갈라 끝없이 투쟁하는 사회로 만든 것도 주효했다. 두 체제에서 똑같이 국민은 수많은 자기 검열 행위로 독재에 협조했다.

두 독재자가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각각 볼셰비즘과 제국주의 세력을 가장 위험한 주적으로 보았던 그들이었기에, 전쟁을 불가피한 역사적 필연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두 독재 체제는 정치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수립된 군사적 상징물이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두 독재자 및 체제에 관한 이야기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두 체제 공히 스스로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라고 주장했다는 점 외에도, 우리 사회 역시 독재를 경험했고 휴전선 너머 확실한 독재 체제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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