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 보석 캐기 ‘귀신눈’ 허정무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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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서는 허정무(53) 축구 대표팀 감독을 ‘한국 최고의 스카우트’라고 부르곤 한다. 진흙 속에서 보석을 골라내고, 숨어있던 재능을 파악하는 눈이 귀신같아서 붙은 별명이다.

허 감독이 맡은 지난해 대표팀에는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이동국(성남)·설기현(풀럼)·이천수(수원)·조재진(감바 오사카) 등 기존 스타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이근호(대구)·기성용·이청용(이상 서울)·정성훈(부산) 등이 대표팀의 주축이 됐다.

허 감독은 “기성용은 원래 공격 성향이 많은 선수”라며 그의 잠자던 킬러 본능을 깨웠다. 기성용은 A매치 데뷔 2경기 만인 9월 10일 북한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렸고, 10월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도 골을 넣어 2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지난해 29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태극 마크를 단 정성훈은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쳐 팬들로부터 “K-리그에 저런 선수가 있었느냐”는 찬사를 들었다.

이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명지대 1년생 박지성에게 태극 마크를 달아준 이도 허 감독이었다. 이름없고 왜소한 박지성을 두고 주변에서는 “허 감독이 지성이네 감독과 바둑 두다 뽑았다”고 비아냥댔다. “왜 뽑았느냐고? 3년만 기다려봐라”던 허 감독의 예감은 완벽하게 적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히딩크의 작품이지만, 송종국·이영표·이천수 등 4강 주역을 과감히 발탁해 조련한 허정무의 음덕도 있었다.

허 감독이 선수를 고르는 기준은 뭘까. 그는 “처음엔 스피드와 발재간이 중요하지만 나중에는 지능과 인성을 갖춘 선수가 성공한다”고 말했다. “뛰는 것만 잘하면 절대 어느 수준 이상 클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허 감독은 품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박지성보다 더 재능이 뛰어났던 선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지성이가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팀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지도 눈여겨본다”며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는 기량이 좋아도 뽑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허 감독은 8년 전 대표팀 지휘봉을 히딩크 감독에게 넘겨줬다. 당시는 쓰라렸지만 이제는 “오히려 히딩크가 와서 잘된 것 아닌가”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만큼 여유도 생겼다.

허 감독은 “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지만 무릎 3곳에 뜸을 뜬 후 기적처럼 회복해 출전하고 골도 넣었다. 대표팀 감독으로도 한 번 실패했지만 또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도 선수 때처럼 오뚝이같이 일어나겠다”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에게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목표를 묻자 버럭 화를 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될 때까지는 남아공의 ‘남’자도 꺼내지 마세요.”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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