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4시간 먼저 새해 시작한 사르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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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프랑스 수도 파리는 잠들지 못한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과 프랑스 국민들이 밤새도록 파리 시내 곳곳을 다니며 새해를 맞는 기쁨과 설렘을 나눈다. 프랑스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랑하는 샹젤리제에서는 이날 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남자가 키스하는 것도 허용될 정도로 모두가 친구이자 연인이 되는 축제의 날이다. 개선문을 배경으로 샴페인과 맥주병을 높이 들고 ‘본 아네(Bonne Anne,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는 파리지앵의 모습은 이제 세계인들에게 친숙한 새해맞이 풍경이 됐다.

그러나 프랑스가 새해를 ‘놀자판’으로 맞이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프랑스에서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은 대통령궁인 엘리제궁 집무실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12월 31일이 되면 오후 8시(현지시간)에 TV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한다. 지난해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엘리제궁 도서실에 서서 10여 분간 프랑스 국민에게 연설을 했다.

엘리제궁 공보실은 지난해는 특히 사전에 대통령의 ‘제야 연설’에 대해 언론에 자세히 설명했다. 올 초 프랑스 경제가 혹독한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대국민연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공보실은 어려운 한 해를 앞둔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이 해야 할 업무들에 대해 “통찰력 있고, 분명하며, 긍정적인 모습”으로 대국민연설에 나설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어느 때보다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한 해의 항해를 단호하게 시작하려고 하니, 국민 여러분도 대통령을 믿고 위기 극복에 동참해 달라”고 부탁하는 메시지다.

공보실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의 새해 첫 업무는 일하면서 새해를 맞는 사람들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응급 구호요원과 간호사, 경찰과 헌병, 대중교통 운전자 등이 초대된다.

사르코지는 또 의회도 새해 벽두부터 경기 살리기 법안에 매달린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린다. 노조들이 29일 대규모 파업을 예고한 데 대해서도 파업 자제를 요청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구한다. 경제가 어렵지만 ‘사르코지표 개혁’에는 후퇴가 없다는 뜻도 분명히 할 계획이다.

세계 모든 나라와 같이 올해 프랑스 앞에 놓여 있는 숙제는 산더미다. 그러나 프랑스는 4시간 빨리 새해를 준비하는 자세로 문제 해결에 먼저 나서는 것이다. 프랑스 인구 6400만 명이 총 2억 시간 이상을 벌고 들어가는 셈이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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