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민나 도로보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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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모두가 도둑놈들'이라는 뜻의 일본말인“민나 도로보데스”가 서민사회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은 5공(共)초기인 82년말이었다.한 TV방송의 연속극이었던'거부실록'의'공주갑부 김갑순'편에서 주인공이 툭하면 내뱉었던 말이다.일제치하 공주

에서 큰 재산을 모았던 김갑순이라는 갑부가 주변에는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 뿐이라는 피해의식 속에서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이 전파를 타자마자 대뜸 유행한데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다.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통치아래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서민들에게 비록 일본말이긴 했지만“민나 도로보데스”란 말로 이심전심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던 것이

다. 특히 그해 5월에 터진'장영자(張玲子)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로서 이 말을 더욱 널리 유행케 하는데 공헌했다.

그 방송극을 집필했던 작가(김기팔.金起八)는 외압에 의한 집필중단과 자진절필 등으로 곡절을 겪은 끝에 91년 세상을 떠났고,타이틀 롤이었던 김갑순역(박규채.朴圭彩)은 문민정부출범의 공로를 인정받아 중요한 문화예술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다.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 어쩐 일인지“민나 도로보데스”라는 말에 대한 느낌만은 그때나 이때나 다를 것이 없다.

까닭은 분명하다.'장영자사건'은 더 말할 것도 없고,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권력형 비리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들이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채 결국 흐지부지 마무리 되고 만다는'교훈'을 일깨워줬기 때문이다.한보사건에서 도대체 몇명

의 국회의원이 얼마의 돈을 챙겼는지 전모는 밝혀지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점점 현실화해 가는 가운데 이런저런 모임에서 새삼스럽게“민나 도로보데스”라는 말이 자탄조로 흘러나오는 것도 국민들의 한결같은 분노를 대변한다.

그같은 분노는 오늘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는 5,6공의 전직 대통령들이 옥중에서 하고 있다는 '나라걱정'조차도'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핀잔하게 한다.'죄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기'를 기대할 때도 아닐 뿐더러 모든 것이 인과(因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만약'이라는 가정(假定)도 부질없지만 권좌에 있을 때 좀더'나라걱정'을 했던들 오늘날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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