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자칼럼>물가부터 잡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제는 물가를 잡아줘야 하는데….”

요즘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임금.금리.땅값등 이른바'3고(高)'를 하루 빨리 잡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최근 기업들의 임금동결 움직임도 같은 차원이다.

그러나 물가는 어떤가.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소비자물가는 올들어 3월까지 2.2%가 올랐다.지난해 같은 기간의 1.3%보다 0.9%포인트나 높은 수치다.특히 공공요금의 인상률이 높다.

최근 LPG가 16%,LNG가 9.7%,쓰레기 봉투값이 7.6%,국공립대 등록금이 5% 뛰었다.철도요금(10%),택시요금(10%),버스요금(7.4%),전기료(6.9%)등도 인상대기중이다.

환율도 뜀박질을 계속해 물가에 압박을 주는데다,한보.삼미의 부도로 인한 중소기업 도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자금을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게다가 올해는 대통령선거까지 치르게 된다.

꿈틀거리는 부동산값도 문제지만 최근의 심상찮은 물가상승 조짐 때문에 임금억제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지난달 사무직근로자의 임금을 동결하고 곧 생산직의 임금협상을 앞둔 한 기업 관계자는“노조가 최소한 물가상승분만큼은 보전해 달라면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임금(명목임금)이 동결되면 물가상승률만큼 실질임금은 깎이게 돼 가계에는 주름살이 깊어진다.저축이나 연금.적금을 붓는 등의 미래를 위한 계획적인 준비도 어렵게 만든다.

'임금동결'은 근로자와 기업.정부라는 세 가지 발에 의해 받쳐지는 솥이라 할 수 있다.근로자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기업은 고용을 보장하며,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각각의 역할을 다해야 솥이 넘어지지 않는다.

이런 전제 아래 근로자들은 노사화합대회에 나가 머리띠를 두르고 임금동결을 선언했고 기업측은 이를 고마워하며 고용안정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임금동결 행렬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그동안 임금이 상대적으로 덜 올랐던 중소기업들까지 합류했다.

하지만 정부는 물가인상을 주도하는 공공요금 인상을 잇따라 허용하고 물가를 잡을 구체적인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물론 근로자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의 거품을 빼내야 한다.그러나“고통을 분담하자는 임금동결의 논리가 물가 때문에 무너지면 경제는 파국을 맞고 그 책임은 물가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는 한 기업인의 지적을 물가당국은 경청해야 할 것이다. <이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