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이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크고 작은 변화가 북한 경제에 일고 있다. "변해야 산다"는 이 시대의 화두가 북한에도 통용되기 시작한 것인지 최근엔 외국인에 대한 휴대전화 허용과 금강산 관광지구와 관련한 노동.광고 등 하위 규정 제정이라는 또 다른 변화의 소식이 들려온다.

사람에 따라 변화의 강도를 느끼는 정도는 다를 것이다. 그까짓 휴대전화라니, 하고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북한 경제를 지켜본 필자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변화로 다가온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과 교차하면서.

휴대전화를 허용했다는 보도는 지난해 3월 말 평양에서의 너무도 난감했던 기억으로 연결된다. 당시 필자는 남북 공동 주최의 한 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 고려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은 먼저 회의장인 인민문화궁전으로 떠나고 필자만 따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북측 안내원은 회의장에 도착한 뒤 차량을 호텔로 다시 보내겠다고 했지만 차량은 오지 않았다. 혹시 깜빡 잊은 것일까 전화를 해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북한의 대표적 컨벤션센터인 인민문화궁전엔 전화가 없었고, 안내원도 휴대전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차는 왔지만 발표시간에 늦을까봐 애태웠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금강산에서의 북한 노동자 임금을 중국보다 낮은 월 50달러 수준으로 결정한 노동규정 역시 몇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나진.선봉 특구의 임금은 100달러 이상으로 중국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필자는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책임지고 있던 북측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특구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임금이 중국보다 낮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지 않다면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 비해 투자환경이 열악한 북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의외였다. 그는 "당신, 조선 사람 맞습니까? 우리 민족은 단군자손으로서 중국 민족보다 훨씬 우수한데, 어떻게 중국보다 임금이 낮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정색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북한이다. 외국인은커녕 행사에 동원되는 안내원에게조차 휴대전화를 지급하지 않던 북한이다. 정보 유출 방지라는 보안상의 이유가 효율성.편리성이라는 실용적 이유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랐던 북한이다. 비교우위나 임금경쟁력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특구만 지정하면 외국 자본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던, 참으로 물정 모르던 북한이었다. 그랬던 북한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배경에는 아직도 심각한 경제난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1990년대의 마이너스 성장을 끝내고 지난 수년간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 결과 '경제적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모든 공장이 안 돌아갈 때는 전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경제 회복으로 공장이 돌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그만큼 전력에 대한 아쉬움은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북한은 이 '경제적 아쉬움'을 독자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결국 "열어야 산다"는 현실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휴대전화 허용을 통해 외국인 투자가의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고자 하는 것이다. 금강산 하위 규정은 임금경쟁력을 통해 남한을 비롯한 외국자본 유치를 도모하는 것이다. 심지어 네온사인 광고판까지 허용하면서.

당연히 바람직한 변화다. 그러나 불충분하다. 좀더 변해야 살고, 좀더 열어야 산다. 임금을 낮췄지만 통신과 통행이 자유롭지 않다면 활발한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방 확대와 이를 뒷받침하는 내부 개혁. 진부한 말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북한이 기대하는 만큼의 해외자본 유치는 곤란하다. 덩샤오핑(鄧小平) 역시 오늘날과 같은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해외투자 유치를 가능하게 한 남순강화(南巡講話)의 서두를 이 진부한 말로 시작하고 있다. "개혁과 개방으로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죽음의 길밖에 없다."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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