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KBO총재 왜 문화부가 농단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문화체육관광부 현직 사무관이, 나중에는 국장이 언론 보도를 통해 “KBO가 사전 협의 없이 총재 후보를 추대해 불쾌하다, 유감이다”라고 했다. 결국 구단 사장들이 추대한 후보는 고사의 뜻을 밝혔다. 나는 78년 야구협회 통합 때 실무 책임자였다. 81년 프로야구 출범 계획을 입안했으며 사무총장으로 9년, 구단주 대행으로 9년을 야구계에 몸담았다. 20년 동안 야구 행정을 집행하는 동안 문교부 체육국, 체육부, 문화체육부의 사무관이나 국장이 이런 망언을 했던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화부 장관은 KBO로부터 총재 승인 요청이 들어오면 적절한지를 판단해 가부 결정만 하면 된다. 사전 협의는 무슨 사전 협의인가. 장관이 야구단 적자를 책임지고 메워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의 태도는 세계 프로스포츠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버드 셀릭 커미셔너의 예를 들자. 셀릭은 미국 언론에서 ‘독재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구단들로부터 받는 신뢰는 대단하다. 금지약물 복용 스캔들로 미국 정계 일각에서 퇴진설이 불거지자 구단주들은 올해 1월 17일 긴급 회의를 소집해 셀릭의 임기를 2012년까지 연장했을 정도다. 2005년에는 구단주들이 “야구 총재 연봉이 농구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며 연봉을 1450만 달러로 인상했다. 셀릭은 임기 도중 포스트시즌 확장, 인터리그 실시, 원정팀 배당 증액, 사치세 도입, 구장 신축, 사무국 구조조정, 국제 수입 확대 등의 일을 해냈다. 셀릭의 개혁으로 취임 전 적자이던 25개 구단이 현재 흑자로 전환했다.

보수적인 일본 프로야구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월 23일 구단주 회의에서는 양대 리그 사무국을 폐지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시에 단장 회의를 폐지하고 구단주 회의에서 현안을 토론, 의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커미셔너에게는 기존에 없던 의결권을 부여했다. 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총재 연봉을 올렸나. 그가 ‘일하는 총재’였기 때문이다. 왜 일본 프로야구계는 과거 허수아비 취급하던 커미셔너에게 힘을 실어주려 하나. ‘일하는 총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유능하고 실천력이 있으며 사업을 잘하는 커미셔너를 앞다퉈 모시려는 게 세계 프로스포츠의 흐름이다. 야구 역사가 50년, 100년이 넘는 외국 리그에서도 이렇다.

국내 프로구단에서 상품 판매 수입이 적은 이유가 있다. 프로야구 역사가 아직 27년이라 야구를 즐기는 팬은 많아도 야구에 미친 팬은 적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 프로야구에서 일하는 총재가 더 절실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는 500만 관중 시대를 다시 열었다. 하지만 500만 명이라는 숫자 아래에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깔려 있다. 시장이 큰 구단이 이겨야 관중이 들어오는 구조다. 새 총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낙후한 야구장을 새로 지어야 하고, 선수들이 삼복더위에 피땀 흘려 벌어들이는 수입을 지키고 늘려야 한다. 재정이 약한 구단도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KBO에서 야구 발전과 상관없는 지출과 기구도 줄여야 한다. 사무총장 자리도 필요 없다. 총재 밑에 실무 디렉터를 두면 된다.

개혁에는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는 둘이 아니다. 한 사람이다. 그가 바로 총재다. KBO 총재의 연봉과 판공비를 더하면 2억원이 넘는다. 이 돈을 받아야 하는 총재는 끊임없이 야구 발전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야구에 문외한인, 군림하려는 총재는 더 이상 안 된다.

이용일 한국야구위원회 초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