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人비하 이유 상영 철회 '폴링 다운' 국내 개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지난 94년 YMCA등 시민단체들에 의해 인종차별영화로 분류돼 개봉이 철회됐던'폴링 다운'(Falling Down.추락)이 19일 3년만에 개봉된다.

조엘 슈마허감독이 연출하고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한'폴링 다운'은 특히 당시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가 한인구타장면을 삭제한 채 개봉하려 해 물의를 빚었다.

주인공이 한인상점에 들어가 불친절한 한인주인과 시비가 붙자 “여기와서 살려면 말부터 제대로 배워라”“우리가 너희 나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줬는지 알아”라며 야구방망이로 구타하고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이 한인비하라는 반발을

샀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거의 무리가 없다.오히려 요즘 실업사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정에 비춰볼 때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수작이다.

영화는 청춘을 바쳐 일해온 방위산업체에서 해고당한 중년 백인남자의 짜증나는 하루를 쫓아간다.그의 이름은 영화 내내 밝혀지지 않고 다만 차량번호판에 쓰여있는 '디펜스(방어)'로 알려질 뿐이며 그가'폭력'을 휘두르는 유색인종 마을에서

는 목격자들에 의해'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백인남자'로 분류된다.

슈마허감독은 정교한 카메라움직임으로 시작부터 관객들의 목을 조인다.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지글거리는 고속도로는 출근차량과 도로공사로 정체를 빚고 있다.주인공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는 에어컨이 고장난 차안에서 숨을 헐떡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짜증나는 불협화음 뿐이다.

게다가 파리 한마리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약을 올린다.보는 관객들에게까지 그의 미칠 듯한 심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연출솜씨가 훌륭하다.

디펜스가 마침내 자동차를 버리고 인근 마을로 들어가면서 그의 일상탈출의 몸부림은 시작된다.마침 그가 들어간 곳은 남미계와 동양계들이 많이 사는 가난한 동네.아내와 딸을 때려 이혼당하고 접근금지처분을 받은 그는 딸의 생일을 맞아 전

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딸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직장에서 먹으라고 싸준 샌드위치와 사과 하나가 든 가방을 달랑 들고 있다.

그러나 한인상점에서의 폭력으로 시작된 그의 하루는 라틴계 깡패들을 만나 유혈사태가 벌어지면서 엄청난 총기들을 손에 넣게 된다.그의 분노는 그가 맞닥뜨리는 사회문제들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다.

영화는 여기에 현실 문제를 느끼면서도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프렌더게스트(로버트 듀발)라는 형사를 등장시켜 대비를 이룬다.그는 디펜스를 추적하면서 묘한 흥분을 느낀다.

우여곡절 끝에 딸을 만난 디펜스는 프렌더게스트의 총 앞에서 결국 바다로 몸을 날리는'추락'을 선택한다.

백인중산층의 위기의식과 불안한 심리를 뚫어본'폴링 다운'은 '배트맨 포에버''의뢰인'을 만든 슈마허감독들의 작품중 가장 뛰어난 작품.

또 마이클 더글러스도 광기어린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으며 로버트 듀발.바버라 허시등 연기파 배우들이 영화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이남 기자〉

<사진설명>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당한 중년 백인남자가 극단적인 분노.불안감을 폭발시키는 하루를 그린'폴링 다운'.조엘 슈마허감독의 연출과 마이클 더글러스의 연기가 추락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