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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1세기 유망사업' 유통업 점검 -백화점.할인점 봇물 과잉투자 우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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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통업 진출이 봇물을 이루면서 과잉.과열투자가 아니냐는 논쟁이 일고 있다.유통산업이 정보산업과 함께 2000년을 여는 차세대 유망 성장업종으로 꼽히면서 30대 그룹중 절반에 가까운 14개 그룹이 유통업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을 선

언했다.이런 추세라면 2000년에는 전국에 백화점이 2백개,할인점이 1백90개나 들어설 전망이다.여기에 까르푸.마크로를 비롯해 시장개방과 함께 몰려올 외국 유통업체들까지 감안하면 웬만한 대도시에는 한집 건너 하나씩 유통업체가 들어설

정도로 공급과잉이 예상된다.이같은 과잉진출은 부실업체를 양산하고 결국 유통업체간의 인수.합병(M&A)등 구조개편이 뒤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유통업 진출의 실상과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일산 신도시의 신세계 E마트는 요즘 하루평균 매출이 2억원수준이다.94년9월 개점이후 2년간 하루매출이 3억5천만원선을 꾸준히 유지했던 것이 킴스클럽 일산점이 문을 열면서 3억원선으로 내려갔고 까르푸.마크로가 진출한 지난해말부터는

2억~2억5천만원을 채우기도 힘들어졌다.

E마트는 그래도 워낙 일찍 진출한 탓에 그동안 일산 상권을 독식하는 재미를 본 편이다.킴스클럽은 96년4월 개점한지 7~8개월만에 까르푸.마크로의 공격을 받아 매출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곤두박질했다.까르푸(3억5천만원)와 마크로

(1억5천만원)가 상권을 그만큼 빼앗은 것이다.일산의 할인점 상권만 놓고보면 E마트 시절의 3억5천만원에서 4개 점포체제 아래서는 8억원이상으로 이른바 파이가 커진 셈이지만 개별 업체들의 경영압박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

이다.게다가 내년이면 백화점 6개,할인점 9개등 총 15개 점포로 늘어날 예정이어서 기존 점포들의 매출감소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백화점은 인구 12만,할인점은 10만명에 1개 점포가 적당하다는게 유통업계의 정설이다.그래야만 백화점은 5년,할인점은 3년안에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도 30만 인구의 일산이 15개 점포를 떠안게 됐으니 제아무리

상권이 커진다해도 과포화를 면키 어려운 형국이다.

인구 40만명의 분당신도시도 2000년까지 백화점 7개,할인점 8개등 총 15개 점포가 들어선다.블루힐.뉴코아등 이미 6개 점포가 문을 열어 벌써부터'제살 깎아먹기'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백화점은 목좋은 땅(보통 2천평)을 잡으려면 분당등 신도시의 경우 보통 4백억원이 필요하다.여기에 연건평 1만5천평 기준으로 건축비(평당 2백50만원)와 인테리어비(평당 1백50만원)로 6백억원이 소요된다.부대비용까지 합치면 백화

점 하나를 차리는데 1천2백억원이 들어가는 셈이다.따라서 금융비용(연리 15%정도)과 매출이익률(22%)을 견줘보면 연간 매출 1천8백억원,하루평균 5억원이상은 팔아야 5년후 간신히 손익분기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유통업체 난립은 일산.분당.부천.대전둔산등 신도시에서 심한 편이지만 서울.부산.대구.광주를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업체끼리 경쟁이 격화되면서 출혈진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할인점의 경우 부지.건축비를 합쳐 투자금액이

3백억원을 넘지 않아야 채산을 맞출 수 있다는게 통설인데 5백억원을 투자하고라도 일단 점포를 열고보자는 경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처음부터 부실요인을 떠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대전 둔산동의 까르푸매장 앞쪽으로 1천5백평 규모의 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뉴코아가 지난해 10월 까르푸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할인점인 킴스클럽용으로 황급히 산 땅이다.이같이 서둘러 땅을 사다보니 시세보다

더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게 부동산업계의 귀띔이다.

뉴코아의 김의철(金義徹)회장은 까르푸와 마크로가 각각 전국에 10개 이상의 할인점용 부지를 이미 확보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외국계 할인점의 다점포 전략에 바짝 긴장한 金회장은 담당자들을 몰아세웠고,부지확보에 비상이

걸린 실무진으로서는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부지매입을 강행했다는 후문이다.국내 경쟁업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몰려드는 외국업체에 적극 대응할 필요성에 몸이 달았던 것이다.

이후 뉴코아는 전국 30여개의 점포부지를 극비리에 확보하는등 공격경영에 나섰다.그러다보니 당연히 자금이 달릴 수밖에 없었고 납품업체에 대한 어음결제일을 늦췄다가 지난달 거센 부도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셈이다.결국 유통업계의 과열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벌써부터 나타나기 시작한게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하게 된 계기였다.

신한종합연구소 김재철(金載哲)산업팀장은“유통업의 과잉진출로 인한 폐해는 기간산업에 비해 크지 않지만 일단 경영압박으로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며“수년내에 유통업계가 한바탕 구조개편과 M&A 바람에 휘말릴 것

”으로 내다봤다.

할인점 위주의 급속한 재편은 또 유통구조발달의 왜곡을 가져오는 문제점도 낳고 있다.미국.일본.유럽처럼 백화점→대중양판점(GMS)→할인점을 거치지 않고 백화점에서 곧장 할인점으로 건너뛰는 바람에 노하우를 제대로 쌓지 못했다는 지적이

다.상품.소프트웨어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해 저가(低價)경쟁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과다투자까지 감수하고 있어 수지구조의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권을 무시한채 점포가 많이 들어서면 매출둔화가 불가피해지고 결국 수지악화와 투자회수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종태.김시래 기자〉

<사진설명>

할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상권을 무시한 과잉 진출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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