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세기를찾아서>11. 인도의 마음 갠지스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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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은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Varanasi)에서 이 엽서를 띄웁니다.매년 1백만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찾아와 ‘인도의 마음’을 길어가는 곳입니다.이곳 사람들은 갠지스를 강가(Ganga)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나는 당신의 편의를 위해 갠지스라 쓰겠습니다.

갠지스강은 당신도 잘 알고있듯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원해 메마른 인도대륙을 적시며 곳곳에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피운 인도의 젖줄입니다.갠지스강이 이곳 바라나시에 이르면 마치 전생(前生)으로부터 흘러오던 강물이 잠시 이곳을 이승으로 삼다가 떠나려는듯 초승달같은 만곡을 이루면서 유속(流速)도 뚝 떨어집니다.

나는 아직도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강에 배를 띄우고 강물과 함께 천천히 흘러갑니다.강가는 벌써 강물에 몸을 씻고,명상하고,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갠지스강물에 몸을 씻으면 이승에서 지은 모든 죄를 씻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가트(Ghat)라 불리는 이 목욕장은 강물에 닿아있는 긴 돌계단으로 이곳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도 함께 있습니다.

지금도 저만치 두개의 불꽃이 아직도 어둠에 묻혀 있는 수면을 밝히며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불에 타고 있는 사람의 형체가 장작불 속으로 보입니다.이곳 갠지스강가에서 죽고 그 재를 강물에 흘려보내면 윤회(輪廻)를 벗고 영원한 해탈(解脫)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장작값으로 손목에 팔찌 하나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이곳에 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돈이 부족한 사람은 장작이 모자랍니다.그래서 화장터 주변에는 타다 남은 시체를 얻기위해 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오늘도 기다리고 있는 개가 눈에 띕니다.

나는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워치맨의 감시를 피해 카메라를 들다가 그만 내려놓았습니다.이것은 결코 한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언젠가 당신이 말했습니다.문화라는 이름의 가공(架空)속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정서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당혹감’이라고 하였습니다.외부세계와 인간존재가 직선으로 대면했을때 돌출하는 충격,‘세계는 저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저것과 나의 대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싱싱한 의문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이러한 당혹감과 충격은 현장을 떠나서는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하물며 그것을 한장의 사진으로 만들어 사유화하려는 욕심은 우리들의 정신을 박제화하는 상투적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해야 합니다.창백하기로 말하자면 내가 띄우는 이 엽서속의 언어들도 조금도 다를바 없습니다.당신이 직접 이곳에 오기 바랍니다.비단 이곳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중요한 것은 현장의 당혹감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먼저 주입(注入)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어느덧 갠지스강에 해가 뜨고 아침해는 붉은 노을을 강물위에 던지며 마치 등잔의 심지를 내려놓듯 화장터의 불빛도 줄여놓습니다.그리고 갠지스강은 한줄기 긴 빛으로 변합니다.한줄기의 강물로부터 끝없는 시간의 흐름으로 변합니다.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류하는 종교가 되고 철학이 됩니다.나(Atman)와 우주(Brahman)를 통일하는 달관(達觀)이 됩니다.삶과 죽음,영광과 좌절,부귀와 빈천을 한줄기 강물로 흘려보냅니다.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오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인도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갠지스강에서만이 아니라 메마른 인도땅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달관과 해탈이 있습니다.

여섯명의 자녀를 거두며 살아가는 뱃사공 람지(Ramji)의 한달 봉급이 5백루피입니다.1루피는 30원이 채 못되는 돈입니다.그러면서도 그는 전생의 업(業)을 믿고 윤회를 믿으며 오늘의 선업(善業)을 쌓아가고 있습니다.빈천이나 부귀는 모두 전생에서 지은 당연한 업보(業報)며,이승의 가난과 괴로움도 저승에서는 벗을 수 있다는 무한한 윤회를 믿고 있습니다.선(善·Goodness)은 얼마든지 줄 수 있고 또 얼마든지 받을 수도 있지만 돈은 그럴 수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우리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사람이 물속에서 몸을 씻고있다가 말했습니다.‘노 머니,노 프로블럼’(No Money, No Problem).나는 그가 던진 만트라(警句·Mantra)에 화답하였습니다.

‘노 프로블럼,노 스피리트’(No Problem, No Spirit).

나는 갠지스강이 안겨주는 달관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모든 실재(實在)를 비실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기를 바랍니다.생각하면 그러한 달관에 비록 체념의 흔적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귀중한 깨달음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빨리 도달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끝없는 집착의 윤회를 통틀어 반성케 하는 귀중한 깨달음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갠지스강은 척박한 인도땅에서만이 아니라 도리어 번영과 풍요의 대륙을 가로질러 흘러가야 할 강이라고 생각합니다.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이 아니라 백년 천년 이승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질러 흘러가야 할 강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갠지스강을 새로운 세기(世紀)의 한복판에 만들어내는 일이 우리 시대의 과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뱃사공 람지는 다음에 다시 갠지스강을 찾아올 때에는 손목시계 한개를 갖다주기를 내게 부탁했습니다.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그것은 결코 손목시계의 소유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아니었습니다.자기의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배를 빌린 손님에게,그리고 자기를 고용하고 있는 배 임자에게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그의 양심이었습니다.나는 한동안 나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고민했습니다.어느 투자금융회사의 창립10주년 기념품인 내 시계는 조금도 값나가는 것이 아니었지만 당장의 여정 때문에 끝내 풀어주지 못했습니다.만약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갠지스강을 찾아 오게 된다면 그에게 손목시계 한개를 선물하기 바랍니다.당신이 그에게 주는 시계는 그의 삶과 노동이 되어 갠지스와 함께 흘러갈 것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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