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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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없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22일 당직자 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 지도부가 국회의장실과 정무위·행안위·문방위에서 농성 중인 의원 10여 명과 당직자·보좌진 40여 명의 인력을 크리스마스에도 그대로 유지키로 결정한 것이다. 24일과 25일 당번 조가 발표되자 의원과 당직자·보좌관들은 부랴부랴 크리스마스 일정을 취소했다. 교회 장로인 행안위 최규식 의원은 25일 당번을 맡게 돼 교회의 대표 기도 일정을 취소했다. 24일 야간 당번을 맡게 된 정무위 이석현 의원도 당번 사실을 통보받고서 지역구의 송년회 행사에 불참을 통보했다.

민주당이 결전을 앞두고 신발끈을 조여 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외통위에 상정되던 지난 18일엔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의원총회에 불참한 의원은 사유를 직접 구두 보고하라”고 특별 지시를 내렸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현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군기잡기에 나선 것이다. 원 원내대표는 평소 의총 출석률이 저조한 의원들과 직접 면담을 하거나 전화 통화로 참여를 요청했다. 해외 출장도 금지시켰다. 그 결과 50명도 못 넘기기 일쑤던 의총 출석 의원 수가 22일 문방위 회의장 앞 의총 땐 71명으로 늘어났다.

민주당이 이처럼 집안 단속을 강화하는 이유는 크리스마스 휴전 이후 예상되는 한나라당의 쟁점 법안 강행 처리를 막으려면 의원들의 단합이 최우선이란 판단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는 22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투쟁을 계기로 의원들의 결속력이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이달 초 비당권파 중심의 강경파 모임인 민주연대 출범 이후 확산일로를 걷던 당내 ‘집토끼-산토끼’ 논쟁도 한나라당과의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잠잠해졌다. 온건파 의원들도 “예산안에 이어 FTA 비준안까지 한나라당이 저런 식으로 처리하는데 야당이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는 분위기다. 외부의 적이 내부 갈등을 봉합한 모양새다. 정 대표와 원 원내대표는 수시로 점거 농성 중인 국회의장실·행안위·문방위·정무위 등에 들러 ‘야전 생활’에 지친 의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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