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극 선물하는 ‘산타교수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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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7시 한양대 올림픽체육관 3층 메인홀. 서울 마장동에서 할머니·할아버지와 사는 유수민(12)·지민(11·모두 가명) 형제가 과학 원리를 이용한 연극 ‘흥부네 대박났네’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공연에 초청된 저소득층 어린이와 보육원생 등 100여 명이 앞자리를 메웠다.

최정훈 교수 와 황북기 교수 부부가 크리스마스 자선 과학 연극 ‘흥부네 대박났네’를 연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황북기·최정훈 교수. [최승식 기자]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된 무대의 막이 오르자 누더기 옷을 걸친 흥부가 등장했다. 놀부네 집에서 쫓겨난 흥부는 다쳐 쓰러져 있는 루돌프 사슴을 발견했다. 머리 끈을 풀어 사슴 다리에 나뭇가지를 대줬다. 이때 산타 할아버지가 나타나 사슴 역을 맡은 어린이의 팔에 붕대를 감아준 뒤 깁스의 원리를 설명했다.

“붕대에는 폴리올과 이소시아네이트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물을 부으면 합쳐져 딱딱해집니다. 여러 성분이 결합한 걸 ‘고분자 물질’이라고 하는데, 깁스는 물론이고 안경·신발 등에도 쓰인답니다.” 객석의 아이들 사이에서 ‘아하~’ 하는 탄성이 터졌다.

산타는 이어 흥부에게 박씨를 선물했다. 흥부가 박을 타자 LCD판이 나왔다. “전기가 통하면 내부 분자들의 배열이 달라지면서 투명해진다”는 산타의 설명과 함께 불투명한 흰색을 띄던 LCD판은 유리판처럼 바뀌었다. 흥부가 박에서 각종 전자제품을 꺼낼 때마다 산타는 아이들에게 제품에 적용된 과학 원리를 소개했다.

이날 ‘과학 산타’ 역을 맡은 배우는 한양대 화학과 최정훈(52) 교수다. 7년째 과학 공연을 하고 있다. 그를 무대로 끌어들인 사람은 같은 과 교수인 부인 황북기(47)씨.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을 위해 이웃집 아줌마들과 교육 품앗이를 하던 황 교수는 과학 실험을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보고 남편에게 실험 중심의 교육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2002년 한양대에 설립된 청소년과학진흥센터의 센터장이 된 최 교수는 부인과 크리스마스 때 과학 연극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처음엔 다양한 실험을 쇼 형태로 무대에 올렸다. 2004년부터는 황 교수가 동화에 실험을 접목한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최 교수가 배우로 나서는 연극을 시작했다. 태풍이 불어 소리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도로시가 모험을 떠나며 공명의 원리 등을 알게 되는 ‘황 교수판 오즈의 마법사’를 비롯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알라딘과 요술램프’를 선보였다.

지난해까지 과학 연극은 무료였다. 올해는 일반 관람객에게 이웃 돕기 기금용 입장료 2000원씩을 받는다. 그럼에도 23, 24일 이틀간 열리는 공연의 티켓은 예매 닷새 만에 동이 났다. 공연을 본 수민·지민 형제는 “영화나 연극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재미있는 연극을 보면서 과학의 원리도 배우게 돼 참 좋았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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