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비상>中. 바늘구멍, 신규 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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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황의 여파로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대폭 줄이면서 취업희망자들이 느끼는 실업에 대한 불안감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H대학 경영학과 졸업반인 김철민(金哲珉)씨는“지난해 우리과 졸업생중 10%이상이 취업재수를 하고 있다”며“이런 분위기 탓인지 4학년생들은 학교수업은 뒷전이고 삼삼오오 팀을 짜 영어.컴퓨터.인터뷰등 취업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무려 58군데의 기업체에 지원했다가 모두 실패했던 김준곤(金俊坤.26.K대 산업공학과졸)씨(본지 1월18일자 23면 보도)는 최근 국제화재 계열 정보통신사인 다남산업에 입사,구직자로서의 눈물겨운 대장정(大長征)을 마쳤다.

그는“직장생활에 매우 만족한다”며“낙방이 계속되며 쌓인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8㎏ 빠졌으나 최근 서서히 회복되는중”이라고 말했다.

올상반기 30대그룹이 뽑겠다고 잠정적으로 잡아놓은 신규채용인력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4%나 줄어든 7천5백명선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각 그룹이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실제 채용하려는 규모보다 상당히 부풀린 것이다.

취업전문업체인 리크루트의 유재흥과장은“30대그룹이 올상반기에 신입사원채용을 위해 책정해 놓은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절반수준에도 못미치고 있어 외부에 발표하는 채용규모와 진짜 채용하려는 수와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코오롱그룹 인사담당자는“신규채용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하게 잡아놓았지만 매년 20% 남짓한 자연감소 부분에 대해서는 충원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대신 인력재배치를 실시해 기존의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10대그

룹의 경우엔 취업문이 '하늘의 별따기'수준에 이르고 있다.

삼성그룹 인재개발원의 김용진(金容鎭)씨는“지난해에는 지원자들이 그룹의 청사진이나 전망등을 주로 물어왔으나 올해는'어떡하면 붙을 수 있느냐''시험준비는 어떻게 해야하느냐'는 질문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상반기 채용을 기준으로 10대그룹은 92년(12.4% 증가)을 시작으로 전년대비 93년 18.8%,94년 24%의 신규채용 증가를 보여왔다.그러나 경기침체가 시작된 지난해에 전년대비 3.1% 줄어든데 이어 올해는 18%이상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졸자들의 취업난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비교적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던 덕수상고는 올해 7백80명의 졸업생중 1백명 남짓만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했다.그나마도 대기업이나 금융회사등 세칭 일류직장에 취직한 학생은 드물다고 한다.

학교관계자는“올하반기에는 취업자수가 지난해보다 20~30% 더 줄 것으로 보고있다”며“취업에 실패한 학생들은 보통 1~2년 놀다가 군입대를 하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취업난속에 우수인력들이 중소기업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새로운 풍속도다.

취업희망자들로서는 일단 일자리를 얻을수 있고 중소기업들은 고급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그러나 과거 중소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갈 곳이 더 없어졌다.

학습지 판매회사인 ㈜영교는 올해 66명을 뽑을 예정이다.그러나 이틀 예정으로 열린 박람회에서 첫날에만 준비했던 2천여장의 원서가 바닥났다.

소기업연합회(小企聯)가 오는 3일부터 근로자 50인이하의 소기업에 대한 인력지원센터를 운영한 결과 불과 3주만에 96명이 구직신청을 했다.

전문대졸 이상이 전체 지원자의 91.7%에 이르렀고 대졸자도 전체의 55.2%에 달했다.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기업들이 신규채용을 대폭 줄이거나 채용계획을 아예 포기하는 상황이 하반기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신규인력을 충원해 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지만 새 노동법하에서 정리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인력을 그대로 둔채 신규인력을 채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고학력자의 대량실업은 사회불안정의 주요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가 있다. 〈이수호.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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