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論>담다디와 그때 그사람의 성숙 그리고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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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소녀들이 질러대는 단말마적인 비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음악의 혼이 가택연금당했던 이 90년대에 여성 아티스트의 존재는'황폐'라는 한마디 아니곤 덧붙일 말이 없다.양희은.한영애.장필순같은 역전의 여전사들은 시장의 모욕을 감수해야 했고

,힙합으로의 변신이라는 과감한 도박을 걸었던 싱어송 라이터 박선주의 서바이벌 게임도 무력한 쓴잔을 마셨으며,보배같은 신인 임현정의 데뷔앨범은 그저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댄스뮤직이 자신의 모래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쓰러져가고 있는 이 미묘한 재편의 국면에서 자기 소리를 가지고 있는 두 여성 아티스트의 앨범이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등장한다.바로 이상은의 일곱번째 앨범'외롭고 웃긴 가게'와

19년간의 이력을 총정리하는 유일무이한 여성 트로트 싱어송 라이터 심수봉의 베스트 앨범이 그것이다.

이 앨범들엔 시간의 서리 속에서 성숙하게 발효한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가 서려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두발로 대지를 딛고 선 이의 형언하기 어려운 자신감의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다.

이미 95년의 전작'공무도하가'에서 증명된 것이지만 이제 저 88년 강변가요제'담다디'의 꺽다리 아이돌 스타는 없다.그는 아마조네스가 되는 대신에 사포가 됐다.그는'집'안의 칩거를 통해,그리고'사막'의 고행을 통해 부재에서 존재를

추출하고 무의미함에서 의미를 재구성하려 한다.

이상은의 사운드는 현해탄의 미궁과 같다.모든 악기를 담당한 다케다 하지무와 동행하면서 오욕의 역사가 그어놓은 경계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넘어선다.우리는 브라운관의 스타 한 사람은 이미 잃었지만 고요한 시인 한 사람을 이제 얻은 것이다.

심수봉의'오리지널 골든 베스트'앨범은 우리 대중음악사의 전반 40년을 지배했던 유일무이한 주류 문법인 트로트가 새로운 세대의 도전에 밀려 퇴조하던 70년대 후반부터의 20년동안 가장 빛났던 고갱이를 함축하고 있다.78년 대학가요제

의 최대 충격이었던'그 때 그 사람'을 재즈로 편곡한 오프닝을 지나면 이 앨범의 유일한 신곡'백만송이 장미'의 우울하고 화려한 러시아 발라드가 우리를 기다린다.이 노래는 러시아의 국민가수격인 알라푸가초바의 노래를 이 트로트 아티스트의 감수성으로 번안한 것이다.

이난영에서 이미자로 이어지는 유구한 트로트의 역사에서 심수봉이 이룬 작은 혁명은 트로트의 애상적인 미의식에 기반하면서도 요나누키 단조 5음계의 그늘에서 벗어나 동시대적인 감각의 결을 다양하게 아로새긴다.그것도 거의'혼자만의 힘으로

'열어 젖힌 점에서 의미는 더하다.이 앨범은 바로 노래를 아는'여인'의 연대기다. 강헌〈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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