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 나선 1인 여성극 '그여자, 억척어멈' 박정자씨 열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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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한국연극이 점차 지역성(변방성)을 탈피하고 있다.국내무대에서 토착화된 연극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는 '여성 모노드라마'는 이제 세계수준이란 느낌이다.

지난 7일부터 일본 도쿄의 삼백인극장에서 열리고 있는'국제연극 페스티벌'은 이런 사실을 확인해주는 뜻깊은 현장.'가족'이란 주제로 한.중.일.미 4개국에서 각 한편씩의 1인극(중국은 2인극)으로'경연'을 펼치고 있는데,박정자씨의'

그여자,억척어멈'(김정옥 작.연출)이 연극의 형식미학이나 난숙한 연기자의 기량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공연에 앞서 이곳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한국판 브레히트의'억척어멈(Mother Courage)'.무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부산.일제시대와 한국전쟁동안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여배우가 브레히트의'억척어멈'을 공연하려다

브레히트가 공산주의자란 이유로 공연금지를 당한다.그가 검열을 피해 동학혁명의 농민이야기로 바꿔 무대에 올린다는게 줄거리다.

연출자 김정옥(중앙대교수)씨는 브레히트의 연극미학(소외효과)을수용해 형식적인 완결성을 높이는 한편 박정자씨의 연기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써 정체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여기에는 모노드라마의 단조로움

을 넘어서려는 이병복씨의 다양한 무대표현(인형극.전쟁기록 사진 활용)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일본 국제무대미술센터 나가네 다다오 사무국장의 말.“브레히트의 연극을 한국적 토양과 잘 접목시킨 작품이다.”특히 그는 박정자씨를 가리켜“서랍(이곳저곳에서 무궁무진하게 재능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뜻에서)이 많은 배우”라며 “남녀간의

사랑과 부자관계,역사문제등 각기 분절된 이야기를 조화롭게'인간문제'로 환원시키는 과정이 놀랍다”고 극찬했다.

이번 행사는 30년 전통의 일본 현대연극협회가 3억5천만원의 예산으로 올해 처음 개최한 것.한국작품 외에 일본.중국.미국작품들도 고른 기량이어서 규모보다는 훨씬 실속이 있었다.

일본작품(오키나와 시바이 실험극장의'고향으로 돌아와요,그대')이 우리처럼 전쟁과 연관된 '과거집착형'의 전통적 가족관을 그렸다면 미국과 중국은 보다 현실적인 당면문제를 부각시킨게 특징.

미국작품'부모(親)'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겪는 가족으로서의'자기정체성 위기'를 다뤄 소재의 참신함이 좋았으며 중국작품'부처야화(夫妻夜話)'역시 한창 산업화의 풍랑속에서 갈등하는 신세대'여피족'부부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엮어 시대를 반영했다.

이번'축제'는 30일까지 계속된다.'그여자,억척어멈'의 국내공연은 4월8일부터 학전블루에서 열린다. [도쿄=정재왈 기자]

<사진설명>

삼백인 극장에서'그여자,억척어멈'을 연기하고 있는 박정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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