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에 법안이 꼭 통과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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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11명의 시선은 일제히 케이크를 향하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모두 어두웠다. 여성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남성들은 백발이거나 볼에 살이 빠져 핼쑥한 50~70대 중장년들이었다.

단층 건물로 된 식당은 샐러리맨들이 많이 오가는 서울 양재동 번화가 빌딩숲 속에 위치해 있었고,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의식을 주목하는 행인은 없었다.

시중 드는 사람이 케이크에 초 3개를 꽂고 불을 붙이자 이날 모임을 주최한 이미일씨(59·여)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케이크에 촛불을 켰으니 생일축하 노래를 부릅시다.”

이들은 손뼉을 치면서 “생일축하합니다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16일인 이날 참석자 가운데 생일인 사람은 없었다.

이날 모임은 지난 11일 ‘6·25 전쟁 납북자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접수된 것을 자축하기 위한 납북자 가족들의 모임이었다. 납북자 가족모임은 지난 2000년 결성됐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다가 이번에 8년만에 큰 결실을 이끌어냈다. 생일축하 노래는 법안을 계기로 가족모임이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부른 것이다. 참석자들은 한국전쟁(1950.6.25~1953.7.27) 당시 납북된 가족의 소식을 모른 채 50년 넘게 고통을 받아왔다.

“여러분들 모두 올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꼭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씨의 얼굴에는 간절한 바람이 실려 있었다. 큰아버지 이성봉씨와 아버지 이성환씨는 그녀가 돌잔치를 막 지낸 50년 7월과 9월 잇따라 북에 끌려 갔다.

한국전쟁 민간인 납북자 규모는 8만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법안에는 전시 납북 피해가족의 명예회복, 진상규명, 실태조사, 추모사업 등이 명시됐다. 피해 가족들은 보상금은 원하지 않았다.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법안을 만들려고 한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과연 호응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89명의 여야 의원이 법안에 동의해줬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아버지가 납북된 최광석(72)씨는 그간에 진행된 일을 참석자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법안을 들고 국회 의원회관의 의원실을 일일이 방문했다. 처음에는 의원실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의원 비서관과 보좌관들로부터 문전 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해나갔다.

지난 4월 납북자 가족모임은 18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 전원에게 전자 메일을 보내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법안 동의를 부탁했다. ‘당선 후 법안발의에 동의하겠다’고 한 후보자 가운데 23명이 당선됐다. 하지만 이중 6명은 당선후 말을 바꿨다. 가족들은 또 한번 상처를 입기도 했으나 “다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을 함께 한 이들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소망만은 같았다.

“법안이 내년 2월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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