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한·미 FTA 비준 적극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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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미협회·아시아재단 공동 주최로 열린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 포럼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오바마 정부에 이같이 제안했다.

길정우 중앙M&B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서 한승주 한미협회 회장(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무부 장관), 칼 인더퍼스 조지워싱턴대 교수(전 유엔 주재 미 정치특보), 라자 모한 싱가포르 난양기술대 교수(전 인도 국가안보자문위원), 롤랜드 엥 캄보디아 순회대사가 주제 발표를 했다.

한미협회·아시아재단 공동 주최로 16일 서울 신라호텔 에서 열린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 포럼에서 한승주 한미협회 회장(左)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 회장, 라자 모한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 교수, 길정우 중앙M&B 대표, 롤랜드 엥 캄보디아 외교부 순회 대사, 칼 인더퍼스 조지워싱턴대 교수. [조문규 기자]


아시아재단은 앞서 이들을 포함해 미국·아시아 전문가 22명의 의견을 담은 310쪽짜리 정책 제안서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오바마 정권인수팀에 전달했다. 존 브랜든 아시아재단 국제관계프로그램 이사는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오바마 정부와 미 의회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미국과 아시아의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무역 자유화 확대해야=한 회장과 모한 교수 등은 “미 의회는 오바마 정부에 광범위한 무역 협상 권한을 부여하고, 한·미 FTA도 비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대선 당시 여러 차례 “수십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한국이 미국 차는 수천 대 수입하는 데 그친다”며 한·미 FTA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두 나라의 경제 성장을 촉진해 일자리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며 조속히 비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회장 등은 또 “오바마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는 다자간 무역 자유화 협상인 도하 개발 어젠다(DDA)를 조기에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조속히 벗어나기 위해선 미국이 보호주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역 자유화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6자회담 이어가야=한 회장 등은 “오바마 정부는 조지 W 부시 정부가 지난해 봄부터 추진한 북핵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바마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과의 직접 대화 등 대담한 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이는데, 6자회담을 북핵 협상의 핵심 틀로 유지하는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대대적으로 감축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적극 참여해 핵무기 위협 없는 세계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민주주의 확산해야=한 회장은 “한·미 동맹이 한반도 안보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에 보편적 가치를 확산하는 협력 틀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확산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테러 혐의자나 해외 정치범들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인권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핵심 가치를 훼손했다”며 “미국은 테러를 척결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기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중시해야=한 회장은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를 중시한다는 표시로, 대통령과 국무장관·국방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동아시아 정상회담 등 아시아·태평양 협의체에 자주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엥 대사는 “부시 정부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모임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사이 아세안에 공을 들인 중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며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의 지역 협력기구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한 교수는 “중국·일본·인도·한국은 세계 2·3·6·7위의 소비 대국이며,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80%가 동남아시아를 경유할 정도로 아시아의 위상은 막강하다”며 “미국이 아시아를 주요 외교 파트너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육 협력이나 민간 교류 등으로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있었다.

◆중국·인도 끌어안아야=모한 교수는 “중국이 현재의 세력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오바마 정부는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가는 중국을 미국이 경쟁자로 여겨 배척할 경우 불필요한 긴장만 유발한다는 설명이다. 인더퍼스 교수는 “오바마 정부는 부시 정부가 시작한 인도와의 민간 핵 협력 계획을 마무리하는 등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환경 협력해야=모한 교수는 “오바마 정부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온실 가스(CO2) 감축을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그린 에너지 기술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력 증강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아프간이 제대로 된 국가가 되도록 경제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재홍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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