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청와대의 말 바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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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한국당 새 대표 지명이 이미 당사자에게 통보된 12일 오후 물러나는 이홍구(李洪九)대표등 당직자들은 서울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고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이즈음 강인섭(姜仁燮)청와대정무수석은 새 대표 지명사실을 보도진에게 밝히고 누구인지는 당에서 알아보라고 말했다.보도진으로부터 이를 전해들은 당직자들의 시선은 일순 李대표와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들도 모르기는 다른 당직자들과 마찬가지였다.이들은 姜수석에게 알아보았지만 답을 못얻자 고별식은 청와대 성토장으로 변했고 서둘러 파장이 됐다.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던 李대표와 姜총장마저 불만을 나타낸 데서도 시

사하듯 이회창(李會昌)고문이 신한국당 대표로 13일 등장하기까지 여권(與圈)의 기류는 심하게 요동쳤다.

청와대쪽에서 나오는 발언에 따라 여러 사람들이 대표 물망에 올랐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하루가 다르게 말바꿈이 계속된 반전(反轉)의 사정은 이랬다.

지난주 중반까지 유력하게 거명된 인물은 이한동(李漢東)고문이었다.그는 한보파문의 후유증을 씻고 당의 단합을 이룰만한 최선의 선택으로 여권 내부에서 꼽혔다.

이를 뒷받침해준 것이 6일 姜정무수석의 발언이었다.姜수석은 “경선포기가 대표기용의 전제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姜수석의 말은 경선포기를 할 필요없이 이한동 고문이 대표를 맡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바로 다음날

姜수석은“대표가 누구로 정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姜수석은 8일“다른 후보의 입장에서 볼 때 출발선에서 동시에 뛰어야지 대표가 경선에 나간다면 불공정한게 아니냐”고 첫 발언과는 반대되는 말을 했다.이는 金대통령이 관리형 인물을 대표로 원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관리형 인물이 여럿 거명되자 김용태(金瑢泰)청와대비서실장은 10일“金대통령은 대표가 경선에 나가야 한다,안된다고 전제조건을 단적이 없다”고 말했다.姜수석의 이제까지 발언을 결과적으로'헛소리'처럼 만든 것이다.

통상 예민한 문제에 대한 청와대 수석들의 발언은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그런 관점에서 보면 姜수석의 말바꾸기는 金대통령이 대표선정을 놓고 고심해온 행간을 읽게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신한국당 민주계 한 중진의원은 “그렇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짧은 시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비치게 한 대목은 신뢰와 권위의 상징이어야 할 국가원수의 입장을 어렵게 한 것”이라고 아쉬워했다.청와대는 신뢰와 권위를 스스로 깎지는 말아

야 할 것이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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