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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락장에 쏟아진 1만6000개 중 ‘매도’ 추천 전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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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국내 1000여 명의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 올 들어 ‘매도’ 추천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SUNDAY가 금융정보업체인 Fn가이드에 의뢰해 34개 증권사에서 나온 1만6000여 개의 종목·산업 보고서를 조사한 결과다. 코스피지수는 연초 1890 근처에서 최근 1100선으로 40% 넘게 빠졌다. 봄철엔 꽃피는 반등을 맞기도 했지만, 한눈에 보면 여지없는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런데도 ‘주식을 팔라’는 애널들의 권고는 전무했다.

올해 같은 난세(亂世)엔 똑똑한 ‘재테크 비서’가 절실하다. 투자자들은 증권사 애널들에게도 그걸 기대한다. 그러나 애널들이 제시한 ‘투자 나침반’은 단단히 고장 났다. Fn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주식을 사라’는 추천은 88%에 달했다. 좌절의 장에서 투자자 귀에는 일편단심 ‘사라’는 외침만 들렸다. 이러한 제도권의 엇박자 방향타에 투자자들은 미네르바 같은 분석가들이 득세한 사이버 세상에서 ‘생존 훈수’를 얻고자 했다. 마침 인터넷 투자방송에서 무극선생으로 유명한 이승조씨가 재야의 고수를 모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도전장을 던져 화제다. 투자자를 울리고 웃기는 증권가 보고서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야당(野黨)도 필요하다”

“이젠 반 토막 펀드를 다 손절매하고 금을 사 놓으려고요.” 지난여름 이승조씨는 이런 고객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당시 환매하면 손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 아고라 사이트에 가보라. 아직도 거기서 도는 얘기를 모르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이 대표는 즉시 사이트에 접속했다. “논리가 뛰어난 분석은 많았어요. 그런데 극단적인 시각이 대세였지요. 이러다 큰 사달이 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컨대 금값이 온스당 3000달러 간다는 주장이며, 시장이 금방 망하는 것처럼 떠드는 소리에 불안한 투자자들이 혹한다는 얘기였다. 이때부터 ‘필드에서 살아남은 고수들이 뭉쳐서 뭔가 보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포가 손실을 부르고 이기주의를 낳아요. 시장 중화제가 필요하다고 여겼죠.” 물론 쉽지는 않았다. 8월부터 김종철 주식정보라인 대표며 선우선생 등을 설득했다. 대부분 다른 사업을 하고 있어 애를 먹었지만 10월 들어 시장에 극한 공포가 몰아치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든 게 12일 출범한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다. 이 대표는 “언론사에 보낸 창립행사 초청장이 기사화된 뒤 관심이 증폭돼 깜짝 놀랐다”며 “매달 제도권 보고서를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기존 보고서가 전망이 자주 틀려 투자자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취지다. 그는 무엇보다 개미들을 위한 리서치를 표방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동영상 보고서를 만들어 인터넷에 뿌릴 작정이다.

사실 무극선생도 뿌리는 제도권이다. 서강대(정치외교)를 나와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와 동방페레그린 법인부 등을 거쳐 외환위기 직전에 퇴사한 뒤, 인터넷에 주목하고 팍스넷 같은 사이트에서 이름을 알리며 사이버 증권정보 업체도 차렸다. 제도권 시절 증권주로 큰 수익을 올렸다가 실패해 사채까지 써 봤다. 그 뒤로 무엇보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고 투자자들에게도 그런 원칙을 강조해 왔다.

“아무래도 재야의 리서치센터는 느슨한 조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증권사 리서치의 수준과 정보를 따라잡기도 어렵겠죠. 그러나 현장감 높은 보고서를 만들고, 투자 콘퍼런스도 열어서 MBA(경영대학원)나 유명대 졸업장이 없는 야권의 고수들도 실력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기술적 분석은 한물갔다”

야권의 창당을 제도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20년간 애널리스트로 일해 온 왕고참, 이종우 HMC리서치센터장 얘기를 들어봤다. 평소 ‘좋은 조직’ 만들기 화두에 천착해온 그다. “비제도권 투자정보를 원하는 수요가 끊임없다는 것은 일단 제도권 리서치가 이런저런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그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을 보면 굉장히 투자자 지향적이고 명쾌한 입장을 제시할 때가 많다”고 평가했다. 증권사들이 투자자 관심이 큰 코스닥 중소형주를 안 다룬다는 비판에 대해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증권사는 원래 종목 전망을 하고서 6개월 정도를 보고 틀리면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코스닥 종목들은 6개월 실적을 추정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스닥엔 우량주가 적다는 소리다. “굳이 보고서를 만들라면 내놓을 순 있겠지만 책임 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는 질(質)도 따져보라고 말했다. “자극적이고 기술적인 분석이 많아요. 주가 차트에 의존하는 매매 기법은 검증을 거치면서 시장에서 먹히기가 쉽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요. 그런데 올해는 주가가 워낙 안 좋아 펀더멘털(기초여건) 쪽 얘기가 안 통하는 거죠.”

이에 대해 무극선생은 “물론 기술적 분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장감 있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소속 증권사 영업을 돕기 위해 작성된 냄새가 짙은 보고서를 가려내고, 직접 기업에 찾아가 현장 직원 얘기도 듣겠다”는 것이다.
이종우 센터장도 ‘현장’이라는 코드만은 인정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입사해서 도제식으로 실력을 쌓는다. 시간이 흘러야 보고서에서도 묵은지처럼 맛이 난다. “증권사 애널들은 수련 내공이 깊어도 10년 정도밖에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재야권은 시장판에서 20년 넘게 연마한 이들이 많죠.”

“마사지되는 보고서가 문제”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떨까. 돈을 잘 굴리기 위해 애널들의 보고서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읽어내야 하는 게 펀드매니저다. 베테랑인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재야 보고서라도 일관성만 있으면 좋을 것이다. 제도권 애널들은 ‘중간화’라는 큰 약점을 가졌다”고 말했다. 알쏭달쏭한 회색 보고서가 많아 어떻게 투자하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쓴소리다. “소신을 갖고 기업을 봐야 하는데 항상 후행합니다. 주가는 선제적으로 미래를 반영하는데 시차 있는 보고서만 나오죠.” 장 사장은 이런 것이 의도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투자자 입장에선 한계로 각인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약점은 ‘마사지’라고 했다. 내용을 살짝 주물러서 좋은 방향으로 튼다는 소리다. “A사를 분석하는데 소속사와 자금거래 같은 게 있으면 ‘셀(sell·매도)’을 못 불러요. 그러니 거의 ‘바이(buy·매수)’만 나옵니다.” 그래서 장 사장은 제도권 보고서를 참고만 한다. “그것에 의지해 주식을 사고팔고 해본 적은 없어요.” 요즘엔 증권사가 아닌 자산운용사들도 펀드매니저의 객관적 판단을 돕기 위해 직접 내부에 리서치 인력을 두고 있다.

이종우 센터장도 이런 비판을 인정했다. “개선돼야 할 부분은 맞다. 변명하자면 한국은 매도 풍조가 잘 형성돼 있지 않다. 팔라는 보고서를 내면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은 예사”라고 했다. “이런 일 한두 번 겪으면 리서치 일이 독립운동도 아닌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지요.”

장 사장은 다만 사이버 애널들이 자칫 인기영합이나 역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맹점이라고 했다.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으라는 분석 보고서를 쓸 수 있고, 미네르바처럼 극단으로 흐를 수 있어요. 제도권 증권사들은 엄청난 고객 돈을 다루기 때문에 보고서를 낼 때 조심스럽지만 사이버 애널들은 이런 부담도 없고요.”

그는 “결국 야권과 여권 모두 장단점이 있기에 어느 한쪽만 보는 것 대신 양쪽을 고루 보고 참고하는 게 손실을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종우 센터장도 “증권사 보고서는 의사 결정의 참고 자료로 쓰는 게 좋다”고 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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