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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 첼리스트에서 스물여섯 거장으로 장한나의 내면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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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장한나와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그녀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인지 잠시 잊게 된다. 쾌활한 목소리와 생기 넘치는 웃음소리, 그리고 소박한 화법을 가진 그녀는 누가봐도 발랄한 스물여섯이다. 하지만 음악과 예술, 삶을 대하는 그녀의 시선은 너무 깊고 심오해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몇 번 씩 놀라게 된다.

취재_모은희 기자 사진_크레디아 제공

음악 신동에서 어느덧 스물여섯 거장이 된 첼 리스트 장한나. 그동안 세월의 흐름만큼 그녀 는 음악적으로 한결 성숙하고 깊어졌다. 내년 이면 첼로를 시작한 지 20년째. 뉴욕 자택에 머물고 있는 그녀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일곱 번째 앨범을 발매한 그녀는, 11월에는 한국에서 전국 투어를 시작한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연주 일정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 하고 있는 그녀지만 늘 그렇듯 잘 웃고, 목소리 역시 생기발랄했다.

새끼손가락이 찢기는 부상 투혼
이번 앨범 계기로 새 장르 음악에 도전

인터뷰 직전, 지인으로부터 그녀가 앨범 녹음 중 왼손 새끼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하루에 21시간씩 녹음하던 그녀는 첼로 현이 스튜디오의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끊기면서,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는 것. 그녀에게 손가락 부상은 괜찮은 지부터 물어 보았다.

“이젠 다 나았어요. 사실 일 년에 몇 번씩 손가락을 다쳐요. 보통 금세 아물지만 이번엔 계 속 녹음 스케줄이 이어져 고생 좀 했어요.(웃음) 간혹 찢어진 부위로 줄을 누르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연주에만 몰입 하면서 아픔을 잊으려고 노력했죠.”

장한나는 연주회를 앞두고 부상을 입으면 반창고를 얇게 잘라 상처 부위에 붙이고 연주한 다. 하지만 앨범 녹음은 워낙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작업이기 때문에, ‘행여 반창고가 옆줄을 건드릴까 봐’그녀는 맨 손가락으로 계 속 쇠줄을 눌렀다.

손가락 부상에도 불구하고 완성한 이번 새 앨 범‘비발디의 첼로 협주곡’은 그녀에겐 또 한 번의 도전이었다. 바로크 음악은 그녀가 처음 시도하는 장르. 장한나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팬들뿐 아니라 음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녀는 늘어난 활의 털을 조이고 또 조이면서 치열하게 녹음했노라고 얘기했다.

“비발디는 반주 악기에 머물던 첼로를 솔로 악기로 격상시킨 음악가예요. 게다가 굉장히 열정적인 연주가여서 저 역시 녹음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음악에만 몰두했어요. 비발디 선율은 천천히 긴장감 있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에요. 첼로는 그 흐름을 타고 유유 히 날아가는 갈매기가 되고요. 연주 내내 그 속에서 자유와 평화와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스무 살 중반을 갓 넘긴 나이.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의 생각과 사고는 또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하버드대 철학과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 철학을 선택했다”고 답했고, 지난해 불 쑥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단상에 섰을 때도 갑작스레 외도를 한 계기에 대해 묻자“시야를 넓히고 큰 음악가가 되기 위해 오케스트라 지휘라는 넓은 길을 택했다”고 답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하고 나면 많이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그녀. 요즘엔 지휘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고 말했다.

“앞으로 첼로만 계속한다면, 마치 현미경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질지 모르는 위험이 있어요. 또 음악이란 새로운 것 에 도전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죠. 저는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유형이에요. 첼로와는 달리 지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전 체가 어울려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오케스트라는 공연할 즈음이 되면 단원들과 정이 많이 들어요. 단상에 올라가 단원들을 보면 한 분 한 분이 모두 아름다워요. 저는 그들의 마음을 연주한다는 생각으로 지휘를 하죠. 너무나 새롭고 행복한 작업이에요.”

연주 일정으로 워낙 바쁘다 보니 학교는 잠시 휴학 중이다. 음대가 아닌 하버드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공부에 대한 열정도 음악 못지않게 뜨겁다.

“2학년 마치고 지금은 휴학 중이에요. 학교 다닐 때는 가능한 연주 일정을 열흘 넘지 않게 짧게 잡았죠. 연주 일정이 끝나면 다시 학 교에 가서 교수님 만나고 친구들 강의 노트 빌려 바쁘게 공부했어요. 다시 하버드에 복학 하면 저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어 음악은 잠시 쉬고 학업에만 몰두하려고요. 다른 친구들처럼 도서관에서 밤도 새우고,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싶어요. 3학년부터는 거의 모든 수업 이 교수님과 일대일로 진행되거든요. 하버드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열심히 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싶어요.”

그동안 받은 축복과 늘 감사한 부모님,
나만의 스트레스 컨트롤하는 방법

최근 장한 나는 뉴욕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주택으로 이사했다. 부모와 장한나, 세 식구가 함께 사는 이곳은 독립된 그녀만의 연습실이 따로 있다.

“몇 년 전부터 아빠가 저에게 독립해야 할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씀을 계속 하셨어요. 실제로 집도 여러 번 보러 다녔죠. 하지만 제 경우엔 연주 일정이 워 낙 많아서 혼자 살면 부모님과 만날 시 간이 거의 없어요. 연주나 연습을 할 때 안정된 상황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따로 사는 것은 말고, 집에서 제가 연습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갖자고 했어요. 새 집의 동쪽 공간은 주로 제가 쓰고 서쪽은 저희 부모님이 쓰고 계셔요.”

천재를 자녀로 두는 일은 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부모에겐 많은 에너지가 요구 된다. 장한나의 부모 역시 딸의 교육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온 한국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미 국으로 떠났다.

“처음엔 엄마와 저만 떠나려 했지만 출국 직 전에 아빠가 갑자기 같이 가겠다고 하셨어요. 부모와 떨어져 사는 환경이 저에게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셨죠. 원래 가족이란‘같은 집 에서 사는 사람’이란 뜻이잖아요.”(웃음)

어릴 적부터 장한나의 부모는 딸의 감수성을 키워 주기 위해 여러 공연에 데리고 다녔다. 그녀의 부모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딸에게 첼로를 강요한 적이 없다. 늘 판단과 선택은 장한 나 스스로 하도록 맡겼다.

“예전부터 부모님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 첼로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연주자가 된 다음에도 첼로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 하라고 하셨죠. 덕분에 저는 언제나‘이 일을 꼭 원하는가’자신에게 물어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저에겐 이런 질문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이런 면 에서 저는 축복받은 것 같아요.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뿐이죠.”

그녀는 세 살 때 피아노를 배우다 여섯 살 무렵 첼로로 전향한 이후,‘ 거장’이라는 칭호를 얻는 세계적인 음악가로 우뚝 섰다.

“벌써 20년이나 되었나… 간혹 깜짝깜짝 놀라요. 제 나이에 비하면 굉장히 오래 한 거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발전해 가야 하는데 그 부분이 제일 고민이에요.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느껴져요. 앞으로 계속 첼로를 하다가 혹시 쉬 고 싶은 생각이 들면 저는 그걸 실천할 거예요. 누굴 따라가야 하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없어요. 그런 건 스스로 컨트롤하기 나름이니까요.”

서른 살 이후 결혼과 미래 계획들,
인생에서 추구하고 싶은 것

장한나는 아직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도 마쳐야 하고 아직은 일이 좋기 때문이라고. 서른 살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늘‘장담은 못하지만’이라는 단 서를 붙인다.

“요즘 아빠가 부쩍 시집 빨리 가라는 말씀을 하셔요. 가정을 이루고 가족도 생 겨야 한다면서. 그래도 지금은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어릴 적부터 이 일을 해왔지만 다행히 일을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이상형 혹은 배우자에 대해 깊이 생각 한 적은 없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음악가만 아니면 된다는 것.

“같은 음악가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서 로 충돌이 생길 것 같아서요. 전혀 다른 분야 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을 것 같아 요. 착하고 성실한, 그런 사람이 좋아요.”

한국 공연을 앞둔 그녀는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연습만이 완벽함을 담보한다는 믿음 때문 이다. 연습할 때만큼은 아무리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모두 잊을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정말 없어요. 음악의 경우 악 보는 연구하면 할수록 어려워지죠. 알면 알수록 어렵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해서 나쁠 게 없어요. 음악 연주는 끊임없이 반복해야 해요. 음악에는 한계가 없어요. 본인이 하기에 따라 아주 높은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연주할 때 느끼는 자유로움이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르실 거예요.”

장한나는 앞으로 첼로는 물론 오케스트라 지 휘자로도 계속 공연 무대에 설 예정이라고 말 했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덧붙였다. 더 큰 음 악가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많은 청소년에 게 클래식을 알리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음악가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 왔지 만 앞으로는 저뿐만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 고 싶어요. 그래서 어린이 음악 교실도 꼭 해 보고 싶고요. 사실 이 세상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음악은 영혼을 위한 약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제 음악이 많은 이에게 도 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눔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장한나. 그녀의 순수한 포부를 듣는 것으로 인터뷰는 서서히 마무리되었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현이 끊길 때 손가락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장한나는“제가 너무 힘이 세서… 하하”라며 순백의 웃음을 터트렸다.

취재_여성중앙 모은희 기자 사진_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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