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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승부 부담이 ‘선수 도박’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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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프로선수들은 여러 모로 도박에 취약하다. 우선 스포츠와 도박은 속성상 친근하다. 승부를 다투다 보면 도박의 시초인 ‘내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친구들과 탁구를 치더라도 음료수 내기를 한다. 적은 액수라도 내기를 하면 게임에 더욱 열중하게 되고 스릴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기의 폭증과 중독성이다. 액수가 얼마 이상이면 도박이 되는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기의 액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커져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수들은 경기력 향상 못지않게 내기를 자제하는 마음 수련을 해야 한다. 내기의 액수가 비합리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운동의 재미보다 내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도박이 되는 것이다.

중독성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흥분과 승리의 쾌감에 빠져들어가면서 중독되게 마련이다. 중독은 내기 액수의 증가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 결과는 재정적 파탄과 가정 파탄, 그리고 사회적 물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프로야구 선수들의 불법 인터넷 도박은 전형적인 사례다. 선수들이 자신들의 운동경기 자체에 내기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승부를 다투며 평생을 살아온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들은 경기 결과의 불확실성에 시달린다. 일반적으로 내기는 불확실한 경기 결과에 대한 예측의 확신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경기 결과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안고 살아가는 운동선수들은 도박에 빠지기 쉽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 사회적 분위기도 도박에 취약하게 만든다. 운동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리고 거의 매일 단순 반복적인 훈련을 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스스로 여가시간도 포기한다. 끊임없는 승리의 불확실성과 압박감이라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유 시간이 생겨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 이 틈을 파고드는 것이 도박이다. 심리적으로 위로가 될 뿐 아니라 단순한 방식으로 흥분과 스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사회적 환경에 더해 결정적으로 선수들을 유혹하는 것은 돈이다. 힘든 훈련을 거쳐 스포츠 스타가 되면 고액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선수들은 훈련과 경기에 쫓기느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때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도박, 즉 온라인 도박은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운동선수들이 도박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여가 활동과 사회생활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운동밖에 모르고 자란 선수는 성인이 돼서도 다양한 사회생활을 할 줄 모른다. 전인격체로 자라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해야 한다.

운동선수들도 학창 시절 수업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최저 학력을 의무적으로 취득하게 해야 한다. 선수들의 일상을 제약하는 합숙소도 단계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학생들이 참가하는 운동경기는 주말이나 방학에 열리게 조정해야 한다.

성인이 된 선수들에게는 각종 교양연수 등을 통해 사회활동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운동선수들을 비난하기보다 이들의 처지와 환경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 물론 선수들은 각종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절제심과 경각심을 길러야 할 것이다. 진정한 스포츠 영웅은 경기력만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종영 한국체대 교수·스포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