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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71. 솔트레이크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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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솔트레이크 스캔들 이후 필자(右)와 사마란치는 영향력에 타격을 받았다.

 IOC 역사에서 1999년은 ‘세기말의 악몽’이었다. 이른바 ‘솔트레이크 스캔들’이 터져 IOC 위원 10명이 옷을 벗어야 했다.

올림픽 유치 경쟁이 과열되자 IOC는 2002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결정 때부터 특별위원회에서 개최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도시만 걸러서 투표하기로 했다. 95년 2월 최초의 특별위원회가 로잔에서 열렸다. 내가 위원장이었다. 이틀간 평가단 보고와 유치신청서류를 갖고 심의한 결과 솔트레이크시티(미국), 하카(스페인), 시온(스위스) 등 4개 도시가 후보로 선정됐다. 후보도시 방문도 IOC 위원이 개별적으로 하지 않고 그룹별로 하게 했다. 총회는 솔트레이크시티를 2002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결정했다.

그런데 4년 뒤, 솔트레이크시티 조직위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올림픽 유치 일등공신인 웰치와 존슨에 대한 비방이 쏟아졌고, 호들러(스위스) 집행위원이 기자회견에서 ‘IOC 위원 매수와 금전 살포’를 폭로했다. 서방 언론, 특히 미국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했다.

사마란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개혁안을 만들도록 했다. 딕 파운드가 위원장을 맡았다. 자크 로게, 슈미트, 카라드, 음바예가 위원이었다. 주로 아프리카와 남미 위원들이 문제가 됐다. 자녀 장학금이나 취직 등이 발목을 잡았다. 3월 총회에서 강가·가디르·케이타·무쿠라·아로요·산탄데르 등이 제명됐다. 대부분이 나의 지지자였다. 처음에는 아들 장학금 5000달러 때문에 제명하는 것은 심하다는 분위기였으나 파운드를 비롯한 영·미 쪽 위원들이 “제명안이 부결되면 IOC는 붕괴된다”고 강력히 주장해 결국 관철시켰다.

개혁안도 통과됐다. IOC 위원을 ▶개인 75명▶각국 올림픽위원회 15명▶경기단체장 15명▶선수위원 10명 등 총 115명으로 구성하고, 정년은 70세(기존 위원은 80세)로 단축하고, IOC 위원의 유치도시 방문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집행위원회 휴식시간에 파운드와 나는 언쟁을 했다. 미국에 사는 내 아들(김정훈)이 유치위와 관계 있는 위성회사에서 엉터리 영주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를 공격하는 것은 좋지만 가족을 공격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언성을 높이고 몸싸움 직전까지 갔는데 사마란치가 “됐어, 됐어”하며 말리는 바람에 끝냈다.

개혁안은 통과됐지만 미 연방수사국(FBI)이 조사하고, 미 의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 위원장은 이번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존 매케인이었다.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문회에 간 사마란치는 큰 망신을 당했다.

웰치와 존슨 건은 1년 뒤 법원에서 무혐의로 기각했다. 그들은 2006년에 보상금 100만 달러씩을 받았다. 김정훈도 무혐의였고, 오히려 위성회사를 명예훼손과 위증으로 고소해 승소했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솔트레이크 스캔들로 IOC 위원 10명이 자진 사퇴하거나 제명당했고, 나의 영향력도 큰 타격을 받았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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