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서 헤지·뮤추얼펀드 썰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이달 들어 아시아.남미.동유럽 등 신흥시장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도 뮤추얼펀드 자금이 빠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 4월까지 이들 지역으로 순유입되던 뮤추얼펀드 자금이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이달 들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자금이탈 규모가 23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동유럽.중동.아프리카(7억7519만달러)나 남미(5억3667억달러) 등의 자금이탈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헤지펀드에 비해 자금이동이 비교적 더딘 뮤추얼펀드 자금이 이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의 흐름이 바뀌는 징후로 볼 수 있다. 2003년에는 저금리 덕분에 글로벌 증시로 자금이 몰리면서 뮤추얼펀드의 운용자산 규모가 14조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헤지펀드 전문 조사업체인 얼터너티브 펀드 서비스 리뷰(AFSR)가 5월 초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헤지펀드 규모도 최근 1년 새 56% 늘어 1조1674억달러에 달한다.

이달 들어 국제 자금의 이동을 촉발한 것은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이다.

미국이 완만하게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저금리로 달러를 빌려 고금리의 비달러 자산을 사는 소위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자금은 금리인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금리인상에 대비하기 위해 신흥시장 등에서 손을 털면서 최근 한국을 포함해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쳤던 것이다.

실제로 파이낸셜 타임스는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이달 초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발표된 직후 일주일새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104억달러를 빼내갔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 증시의 충격이 컸던 것은 중국의 긴축과 겹쳤기 때문이다. 중국의 긴축이 경착륙(경기의 급격한 하강)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인 만큼 연착륙 가능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중국의 고성장에 의지해 왔던 한국 경제로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착륙은 착륙 아니냐"고 말했다. 과거와 같은 중국의 고성장에 마냥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아시아 시장에서 국제자금이 많이 빠진 것은 지난 1년간 자금이 많이 들어왔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긴축과 고유가로 에너지 의존도가 심한 아시아의 투자 매력이 사라진 것도 큰 원인이다.

이렇듯 아시아 등 신흥시장과 유럽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투자의 큰 축인 주식과 채권시장이 금리인상이란 악재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떠도는 자금은 초단기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로 몰리고 있다. 한국에서 MMF로 돈이 몰리는 것과 같이 국제금융시장에도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펀드자금 조사기관 AMG데이터에 따르면 MMF는 지난 12일 조사에서 한주간 167억달러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5주 만에 순유입으로 돌아선 것이다. 19일 조사에서도 83억달러가 늘어 2003년 12월 10일 이후 처음으로 2주 연속 순유입세를 나타냈다.

증권가에서는 이달 들어 한국 비중을 줄이고 있는 뮤추얼펀드의 움직임이 추세로 굳어질지가 향후 외국인 투자 동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달 들어 바뀐 자금 흐름의 변화가 추세 전환의 시작이 될지가 관심거리다.

금리인상과 중국의 긴축, 그리고 고유가와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으로 국제투자자들의 주식 등 위험자산 기피현상은 별다른 호재가 없는 한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