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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아무리 하찮은 기회라도 낚아채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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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여름. 하나은행 월곡지점에 대학 출신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이서원(33·당시 23세·사진)씨는 요즘으로 치면 딱 ‘88만원 세대’다. 번듯한 서울의 4년제 여자대학 전산통계학과 졸업반이었지만 경기침체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일단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 서서 차 심부름하고 설거지하면서 한 달에 쥔 돈은 50만~60만원이 전부. 훨씬 나이가 어린 여상 출신 정규직 행원들 월급의 반의반도 안 되는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그저 묵묵히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항상 누구한테나 웃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8년. 미래가 없을 것만 같던 그는 하나은행 본점 차세대 인수지원부 과장에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한파로 공채 출신 정규직 은행원들조차 속속 사표를 쓰고 쫓겨나가던 시절에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 계약직·정규직을 거쳐 책임자급(과장)까지 오른 것이다. 실적은 물론 고객들로부터 평판도 좋아 비슷한 또래의 4년제 대학 졸업 공채들보다 승진이 더 빨랐다. 고객 만족을 인정받아 받는 ‘이달의 우수 행원상’인 별도 아홉 번이나 받았다. 하나은행 6800여 명의 행원 중 별 9개를 받은 사람은 100명도 안 된다.

이 과장은 모든 성공을 그저 인복으로 돌렸다. 그러나 주변에선 “일의 값어치를 따지지 않고 찾아서 하는 성실함, 고객뿐 아니라 주변 직원에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친화력이 고비마다 빛을 발한 것”이라고 평한다.

이 과장은 98년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시급이 나왔지만 늦게까지 일했다.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선배들이 퇴근할 때까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는 일은 더욱 아니었지만 “아무리 아파도 은행에 와서 아팠다”고 회고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99년 4월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금융회사 경력이 최소 2년 이상 필요했지만 지점장이 강력하게 추천해 준 덕분에 이례적으로 1년도 안 돼 기회를 잡았다. 당시 하나은행에선 보람은행과의 합병으로 많은 사람이 명퇴했다. 하지만 이 과장에겐 거꾸로 새롭게 기회가 열린 셈이다. 하나은행엔 이 과장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행원이 현재 50여 명 있다.

이 과장이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던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점에서 똑같이 일했던 한 친구는 “내가 왜 이런 허접스러운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금세 은행을 떠났다. 그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기회라도 그게 내 앞에 왔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며 “적성 운운하며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도 어떤 때는 “이런 걸 하라고 엄마가 공부시키지는 않았는데”라는 자괴감도 있었다고 했다.

이 과장과 함께 근무했던 서울 상계동 보람지점 이경남(여) 지점장은 “직급이 낮을 때부터 항상 책임자처럼 일했다”며 “기다리더라도 꼭 이 과장하고만 상담하겠다는 고객이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계약직 창구직원으로 일할 때 이 과장은 ‘푼돈’을 가져오는 고객도 다 기억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렇게 고객을 기억하니 예금할 일이 있으면 일부러 그를 찾았다. 특별히 상담 기술이 좋지 않아도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밝은 성격과 친화력은 조직생활에서 항상 큰 경쟁력이었다. 그는 계약직 채용 이후 정식 업무교육이나 연수 없이 곧바로 창구에 앉다 보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은행업무가 끝나고 정산을 하면 늘 계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 언니들이 그를 위해 항상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노하우를 알려줬다.

이 과장은 “돌이켜보니 외부 고객 못지않게 내부 직원과의 융화가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누가 뭘 시키더라도 ‘4년제 대학까지 나와놓고는 내가 고작 이런 아르바이트나 해서야 되겠어’라는 생각은 안 했다”며 “항상 성심성의껏 일하는 자세가 오늘을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늘 불안했다. 그는 “공채도 아니고, 하물며 아르바이트 출신인데 이 조직이 나를 알아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주변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별’(고객만족 우수 직원상)을 많이 받았느냐고 부러워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항상 불안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올 8월 책임자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이런 불안감도 떨쳤다고 한다.

이 과장은 최근 경제위기로 취업길이 막혀 고통받는 후배들에게 딱 한가지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힘들다’고 말하기에 앞서 ‘너 스스로 그만큼 노력했는가’를 먼저 질책하라는 것이다. 그는 “후배들은 물론 나 스스로도 ‘힘들다’고 느낄 때 항상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라며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는 결국 길이 열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보다 더 어렵다는 요즘 그는 과거 자신과 같은 처지의 후배들을 위해 인터뷰에는 응했지만 끝내 사진 찍기는 거부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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