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짚기>사라지는 제주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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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산담'이란 말을 아는가.무덤을 둘러싼 돌담.짐승의 침입이나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담 말이다.제주도에 눈길을 돌리자면 밭마다 무덤이 있고 그것은 예외없이 산담으로 둘려 있다.그리고 그 주위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데 어울린다.아낙네가 호미질을 하고 있는 바로 옆에 망자(亡者)가 누워있다.“어렸을 적 산담은 가장 즐겨찾던 놀이터였습니다.어른들이 일하는 사이 우리는 누가 무덤에 빨리 오르나 시합을 하고 담 안에 자라던 고

사리를 꺾어 먹곤 했지요.”회사원 김동찬(28)씨의 회상이다.그러니 제주 사람들에겐 무덤에서 소복 입은 귀신이 나오는 얘기가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제주 무덤들은 꽤 인상적이다.바둑판처럼 얼기설기 그려져있는 밭 돌담 눈금 하나하나마다 10원짜리 동전만한 산담이 들어앉았다.'육지사람'들의 해석과 상상은 거의 비슷하다.“조상을 정성껏 섬기기 위해 집 가까운 밭

에 모신 것이며,일하러 나갈 때마다 문안드리고 새참을 먹을 땐 무덤가에 앉아 고인과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는 정도. 그러나 현실 속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밭 임자와 무덤 연고자가 영판 남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그러니 조상을

늘 옆에 모셔놓고 보살핀다는 생각은 거의 틀린다.

그렇다면 밭마다 생면부지인 사람의 묘소가 모셔진 것은 어떤 까닭에서일까.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의 뿌리깊은 풍수사상을 알아야 한다.'삼대가 어부를 하면 반드시 수장(水葬)의 액운을 당한다'는 제주 속담에서 알

수 있듯 태풍등 자연재해를 항상 두려워했던 주민들 사이엔'조상을 명당에 모셔야만 후손이 평안하다'는 관념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때문에 지관이 묘자리를 한번 정해주면 설사 남의 밭이라 해도 반드시 그곳에 고인을 모셔야 하는 것이다.

“밭안에 묘를 쓰겠다는 사람과 값을 흥정하며 승강이가 벌어지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아예 묫쓰기를 거절하는 일은 원수지간이 아닌 한 없다고 봐야죠.”땅 임자가 누구든 이 부탁만큼은 거절하지 않는 게 풍습이자 미덕이라는게 고옥선(57.

여.북제주군구좌읍)씨의 얘기다.

또한 밭에 무덤이 많이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명당은 유난히 전답 자리에 많은 모양”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그러나 이것 역시 빗나간 생각이다.“제주도의 명당을 자세히 소개한 책'영주영도초'(瀛州影圖草:작자.연대 미상)에'

묘소와 주거지는 늘 떨어져 있어야만 후손이 안전하고,무덤이 집과 인접하면 저승길이 가까워진다'고 나와 있습니다.집.전답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고인의 유택(幽宅)은 서로 멀수록 좋다는 것이 원래의 풍수설입니다.”민속사학자인 진성

기(61)제주민속박물관장의 설명이다.

진관장은 덧붙인다.“해안지역은 산 사람들의 주거지,산간지대는 죽은 사람들의 터전이라는 구분이 분명했습니다.심지어 무덤에서 민가의 불빛이 보이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엄격했습니다.따라서 제주 민담 가운데도 묘지를 배경으로 하는 귀신 얘기가 분명히 있었죠.하지만 제한된 토지에 인구가 늘고 무덤도 많아지다보니 사람들은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유택은 점점 밑으로 내려와 현재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명당 자리에는 맥이 있어 기존의 무덤보다 위에 쓰면 아래쪽 묘에 맥이 끊기기 때문에 후손들간에 큰 싸움이 벌어진다.그러니 유택은 보다 낮은 지대로 내려와 해안가 밭까지 이르게 됐고 삶의 공간과 뒤섞였다.말하자면 전통적인 매장풍습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묘지의 경작지 잠식문제가 이미 이곳에선 뚜렷한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94년도 내무부 통계에서도 제주의 묘지면적이 도 전체의 0.93%를 차지,우리나라 전체평균(0.28%)의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작면적이 줄어듦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을 터인데도 주민들 사이에선 이 문제가 피해의식보

다는 미덕으로,껄끄러움보다는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졌다.오히려 이제는'밭 안의 산담'을 보존가치가 높은 제주도 고유 생활문화의 하나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밭 안 무덤은 분명 줄어들고 있다.61년'매장및 묘지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계속 강화된 규제로 밭에 묘를 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적어도 늘어날 순 없게 된 것이다.거기에 풍수사상의 영향력이 바래가면서 공설묘

지나 가족묘지로 이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골프장등 각종 대형 관광.레저시설이 여럿 들어서 수천기(基)의'밭 안 무덤'을 갈아엎었다.

제주 무덤 역시 여느 문화유산들처럼'개발과 보존의 갈등'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공설묘지에 이장(移葬)토록 해 경작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밭 안의 산담이 제주 고유문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라는

견해가 각각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낸다.이 와중에 80년대 중반엔 제주도를 방문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보기 흉하다”며 길 주변의 산담을 모두 없앨 것을 명령해 절멸위기에 처해지기도 했다.도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그러나 어느 편인가 하면,독특한 무덤문화에 대한 제주 사람 스스로의 보존의식은 미지근하다.가뜩이나 국토잠식 방지를 위한'무연고 불법묘지 철거 허용'법제정 작업이 추진중이어서 보존론자들의 위기감은 더하다.그래서 제주도 묘지에 대한

예외조항 신설 얘기도 나온다.정말 제주다운 풍경 하나를 영영 잃게 될 것인가.지금이 그 갈림길이다. <제주=강주안 기자>

<사진설명>

묘지와 가옥.밭이 조화를 이루는 전형적인 제주도 풍경.북제주군구좌읍의

한 무덤가 당근밭에서 주민 고옥선씨가 한가로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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