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 권력주조 변화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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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권부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알려진대로 북한은 최광(崔光)인민무력부장 장의위원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을설 호위사령관,조명록 군총정치국장,김영춘 총참모장 등 3인을 각각 6,7,8위에 올려놓았다.이들 3인은 김정일(

金正日)의 핵심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계응태와 전병호 당비서들보다 앞서서 호명돼 군부의 부상을 실감케 하고 있다.

더욱이 이 명단에는 황장엽(黃長燁)비서와 지병으로 오랫동안 공식활동을 하지 못했던 강성산(姜成山)총리를 비롯해 연형묵 전총리,최영림.김환 부총리 등 주로 경제관료들이 제외돼 있다.黃비서와 姜총리의 누락은 예견된 것이지만,다른 인물

들의 누락은 의외다.이들이 숙청된 것인지,아니면 단순히 다른 이유로 누락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예의주시해야 하겠지만,黃비서 망명사건을 감안하면 북한이 대대적인 숙청과 인사개편에 착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하다.

사실 올해 북한의 인사개편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그 근거로는 북.미 연락사무소가 개설돼 대미 관계개선이 가시화되고 7월 김일성(金日成) 탈상을 계기로 내부 단속과 더불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공식화할 것으로 예견된데 따른 것

이다.말하자면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만들기 위해 권력엘리트의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김정일의 사람들을 요직에 등용할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이같은 북한의 권력구조 재편방향은 김일성 사후 계속돼온 김정일의 군부중시정책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하겠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여러가지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우선 북한 군부는 대남 강경노선을 추구하고 있다.이들은 한국의 국방태세가

허술하다고 보고 있으며 지난 잠수함침투 사건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둘째,군부는 제도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험주의적인 군사도발을 시도할 수 있는 집단이다.셋째,북한내 개방을 담당한 엘리트들에 비해 조직적인 단결이 강하다

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군부의 부상이 반드시 김정일의 권력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현재로서는 체제위기에 처한 김정일이 군부를 활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이런 의미에서 김정일과 군부는 일종의 연합을 하고

있으며,이들에 의해 북한이 통치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김정일의 군부에 대한 의존도가 지속된다면

권위약화는 피할 수 없다.

이를 전제로 두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하나는 바로 이

김정일-군부연합이 통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김일성 세대의 간부들을

명퇴(名退)시키고,반(反)김정일 간부들을 숙청해 새 시대를 이끌

권력구조를 창출,정치적인 안정을 확보함으로써

역시 새로 물갈이된 정무원의 권한을 더욱 강화해 경제개방정책과

대(對)미.일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黃비서 망명사건으로 확인됐듯이 김정일-군부연합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숙청을 과연 고분고분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김정일정권의 경제정책이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므로

권부내에서 김정일의 통치력에

대한 회의가 숙청과 맞물려 증대하게 되면 혼란이 조성될 수

있으며,모험주의적인 군부가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남도발을 자행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올해는 북한의 내부정세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안정이냐,불안정이냐 하는 기로에 서는 한 해가 될 것이다.더구나 한국의

정정(政情)역시 그리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여 그만큼 우리의 대북정책도

어려운 선택에 놓여 있다고 하겠

다.이런 점에서 25일 담화에서 대통령이 안보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

자체는 적절하지만,위협이 나라안에도 있다는 인식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

지금이라도 대북정책을(정권이익이 아니라)국가이익에 견주어 추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것이 정권이익에도 부합되는

길이다.

<사진설명>

柳吉在 <경남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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