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방위에 '공직자 비리조사처' 논란…검찰 "제2 사직동팀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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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비리조사처)를 신설키로 한 정부의 방침을 둘러싸고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역대 정권이 '공직 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별도의 수사기구를 만들려다 여론의 반대에 부닥쳤던 점을 들어 비리조사처 설치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검찰과 별도의 조사처를 만드는 것은 사정기구의 이원화를 초래한다" "검찰 수사권 독립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기구가 비대화하면서 제2의 사직동팀을 만드는 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비리조사처에 수사권까지 부여할 것으로 알려지자 검찰과의 수사기능이 중복되면서 '옥상옥의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리조사처 신설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사정기관의 숫자가 부족하거나 제도가 없어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한변협의 김갑배 법제이사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공정한 수사를 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기존의 검찰 조직을 독립시켜 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원칙과 지속성이 없었고,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대통령 직속 위원회 소속의 비리조사처가 권력 등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를 벌일 지도 의문이다.

과거 검찰이 정치인 비리 수사 등에서 끊임없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면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듯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성격상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대선자금 수사 등을 거치면서 검찰권이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행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별도의 기구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전담하는 특검제도나 상설기구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김인회 사무차장은 "대통령 산하 기구에 또 다른 사정기관을 만든다면 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비상설 기구이면서 언제든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 특검제도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25일 성명을 내고 "부방위 산하에 특별 경찰기구 형태로 신설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별도의 대통령 산하 독립 기구로 설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리조사처는 2002년 10월 당시 민주당의 신기남 의원 등 28명이 설치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공론화됐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조사 대상에는 국무총리, 국회의원, 행정부 장.차관, 감사원장, 감사위원, 국가정보원장 및 차장, 법관 및 검사 등이 포함됐다.

◇외국 사례=미국.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대통령 산하에 수사권을 가진 별도의 기구를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권력층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는 특별조사기구를 만들어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각각 부패방지조사국(CPIP)과 부정방지독립위원회를 두고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시하고 있다.

박재현.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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