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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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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의 주인공이다. 그 뒤엔 3명의 조연이 숨어 있다. 이념과 출신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모두 땀과 열정을 바쳤다. 루스벨트는 이들을 조화롭게 움직여 뉴딜을 성공시켰다. 뉴딜의 ‘머리’라면 단연 최측근 참모였던 해리 홉킨스 특별보좌관이다. 뉴딜의 기획자인 그는 당시 실업자의 90%를 구제하는 밑그림을 그렸다. 깔끔한 일 처리에다 두터운 신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설거지까지 도맡았다. 사실상 권력 서열 2위였다. 그러나 홉킨스는 골수 사회주의자였다. 직접 스탈린과 접촉할 정도였다. 그의 사후 KGB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소련의 첩자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뉴딜의 ‘왼팔’은 헨리 모겐소 재무장관이다. 그는 뉴욕주 최대의 농장주였다. 이웃 농장의 루스벨트와 오랜 친분을 쌓았다. 코넬대 출신인 그는 고전경제학에 심취했다. 케인스 경제학에는 사사건건 반대했다. 그래서 애당초 뉴딜정책을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재무장관에 오르면서 싹 달라졌다. 집무실 책상에 ‘경제 회생!’이란 문구를 붙여 놓고 공공 투자 확대에 최선을 다했다. 11년간 뉴딜에 필요한 방대한 예산을 무리 없이 조달했다. 모겐소는 미 역사상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기억된다.

뉴딜의 ‘오른팔’이라면 해럴드 이키스다. 민주당 출신인 루스벨트와 달리 공화당 소속이다. 루스벨트는 눈 딱 감고 그를 뉴딜의 현장 사령관인 내무장관에 앉혔다. 이키스는 후버댐을 비롯해 도로·다리·학교·병원 건설 등 수많은 뉴딜사업을 총괄했다. 친정인 공화당이 뉴딜사업에 시비를 걸면 정면충돌도 불사했다. 그의 별명은 ‘정직한 해럴드’.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는 곧바로 솎아내고 의회에는 꼭 필요한 예산만 정확하게 요청했다. 의회는 그가 올린 예산안이라면 두말 않고 승인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포용인사가 화제다. 정적인 힐러리를 끌어안고 공화당 출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그래도 루스벨트에는 못 미친다. 루스벨트는 사회주의자의 머리를 빌리고 공화당과 고전경제학자의 손발을 움직여 뉴딜의 꿈을 이뤘다. 이명박 정부도 정책만 따지면 뉴딜이나 신뉴딜에 비해 손색이 없다. 감세와 재정확대, 한·미 통화 스와프까지 종합선물 세트다. 역시 문제는 사람인 모양이다. 우리 내각과 청와대에는 왜 ‘캠프’ 출신만 가득할까.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