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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야생을 담은 71살 박력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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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종학, 설악산 풍경, 80.5×130.5cm, 캔버스에 유채, 2007. [예화랑 제공]


일흔한 살 노인은 새벽 2∼3시쯤 잠이 깨면 집에 붙어있는 화실로 건너간다. 대개 100호(90×160㎝) 크기 대형 화폭에 일필휘지하다가, 책 읽다가, 텃밭 손질하고 다 자란 무도 뽑아내고 하다 보면 아침이다. 햇빛이 강한 낮에는 그림 그리는 대신 카메라 둘러메고 집 주변 풀이며 꽃을 둘러보고 다닌다. 집은 속초, 설악산 밑이다.

‘설악산 화가’ 김종학(사진)이 12일부터 서울 신사동 예화랑서 개인전 ‘설악의 사계(四季)’를 연다. 전시작 40여 점 가운데는 흔치 않은 누드화도 세 점 포함됐다. 매일 그림 그리고, 매년 개인전을 여는 부지런한 그다.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집계된 작가별 작품 판매 액수는 이우환(210억2900만원)·박수근·김환기·김종학(96억5300만원)·이대원·오치균·천경자 순. 그의 작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움트는 새싹, 만개한 원색의 꽃, 지는 잎, 설산 등 줄곧 설악산 사계를 그리지만 인기있는 것은 단연 여름의 꽃그림이다.

평북 신의주 태생으로 서울서 자란 그가 설악산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딱 30년 전이다.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후 전위적 추상화를 그렸다. 도쿄예술대학과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판화 공부도 했다. 그렇게 40대, 중년이 됐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가정 생활도 안 좋았다. 이혼 위기였다. 서울서 견딜 수가 없어 지인의 설악산 빈 산장에 귀양가듯 파묻혔다. 하늘 한 번 안 보고도 하루를 나던 도회 사내 김종학은 거기서 야생화를 새삼 처음 봤다. “할미꽃 본 적 있나? 비로드같이 두툼하고 보들보들한 자주색 꽃잎이 기막히게 예쁘다고. 내버려둬도 알아서들 피고 지는 야생화가 어찌나 장하던지.”

추상화가 김종학은 그렇게 야생화를 만났고, 이후 줄곧 설악산과 꽃 그림을 그렸다. 사실적 묘사, 원근법을 무시하고, 팔레트에 색을 섞지 않고 원색 그대로를 써서 그리는 김종학표 풍경화다. 설악산에 내려간 뒤 10년쯤 뒤에야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30년간 매일 봐도 하나도 같은 게 없더라는 야생화 외에 그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민예품이다. 야생화도 민예품도 꽃 중에, 골동품 중에 주류는 못 되는 것들이다. 조각보·자수·목가구 컬렉션이 전문가급이다. “같은 공예품인데도 백자는 대우받고 목기는 홀대받는다. 그러나 사방탁자 같은 목가구만큼 우리 고유의 공간 문화를 보여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1년에 넉 달 가량은 서울로 나오는데 그때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 인사동과 장안평 골동품점이다. 설악산으로 아예 집을 지어 옮긴 87년엔 국립중앙박물관에 그간 모은 민예품 300여 점 전부를 기증했다. 환갑 전에는 더러 설악산 종주도 했고, 술도 잘 마셨다. 이제는 건강 탓에 활동 반경도 운신의 폭도 제한돼 간다. 그러나 동양화를 닮아 기운생동하는 필력은 여전하다. “그림은 나를 몰입하게 한다. 단조로운 생활로 보이겠지만 그림 그리다 보면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내년 1월 17일까지. 02-542-362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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