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읽기>1등 그리고 '기타등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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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주연같은 조연'.

TV나 신문에서 이른바'잘 나가는'조연배우를 치켜세울때 동원되는 상투적 수사다.그런데 모호하다.그런 평가를 받는 조연배우는 우쭐할지 몰라도 한번만 더 생각을 굴려 보면 이게 칭찬인지,욕인지 모르겠기에 그렇다.조연이 주연같이 놀았다

면 그 조연배우는 분명 제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아니고,그렇다면 그 사람은 조연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물론 그런 칭찬은 단순한 수사법일는지 몰라도,하지만 거기에는 왠지 우리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불길한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는 것같아

마찬가지로 불길하다.

기악을 합네 하는 이들은 너나없이 모두 현악기나 건반악기로 몰려가기 때문에 국내 오케스트라에는 관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연주자가 점점 없어지고 그로 인해 화음을 생명으로 하는 오케스트라의 존립기반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최근 소식

은 그런 불길한 이데올로기를 갑절로 떠올리게 한다.

조연에 대한 상투적인 칭찬법,관악기 주자의'멸종'등은 결국 문화예술에도“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1등만이 살길이다”는 우리사회의 최고 이데올로기이자 철의 율법이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히 깨닫게 해준다.

영화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감독과 주연으로 채워지지 영화의 핵심인 시나리오 작가가 누구인지는 뇌리에 남지 않는다.기억되지 않는 존재는 자기자리를 고수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국내 영화계에 시나리오 작가가 그렇게 모자라고 설혹

유망한 작가가 있다 해도 대개 시나리오를 감독을 하기 위한 예비수업 정도로 치는 까닭은 감독과 주연만이 1등이고 그외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기타등등'의 존재라는 확신 때문이다.조명의 경우에도 장인 하나 제대로 없는 현실 역시 마찬

가지 이유 때문이다.

뿐인가.대중음악 공연에서도 우리는 가수만 본다.백 댄서가,드러머가,연주자가 누구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때문에 그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열외의 존재들이다.그 존재는 유기체적 소통을 생명으로 하는 하나의 완성된 무대에서 빠져서

는 절대 안되는 존재지만 막이 내리면 사회적 기억과 인준에서 언제나 빠져버린다.

도래할 21세기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인프라가 형성돼야 한다고 너나없이 목울대를 세운다.인프라는 두터움의 다른 표현이다.문화예술의 자산이 두터워야 인프라가 가능할 수 있다.그 자산은 1등보다'기타등등'의 존재들이 넓어지고

두터워질 때 비로소 쌓이기 시작한다.

주연과 조연은,혹은 현악주자와 관악주자는 영화나 음악에 대한 능력의 높낮이를 재는 기준이 아니며 더구나 서열을 배당받는 위치도 아니라는 것,또는 영화나 심포니는 제 각각의 역할과 능력의 상호부조로 이루어지는 장엄한 조화의 산물이라

는,일견 교과서적인 명제가 단지 고색창연한 공자말씀으로 치부돼 1등 이데올로기에 가위눌릴때 문화인프라는 어디에서도 싹을 틔우지 못한다.

주연이나 피아니스트가 왜 1등으로 번역되는지 내 깜냥으로는 요령부득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1등과'기타등등'으로 나누어버리는 우리사회의 악질 바이러스는 오늘도 여전히 안녕하신 듯싶다.

이성욱<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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