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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푸미폰 태국 국왕… ‘탁신 독주’ 막으려다 상처 받은 카리스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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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81세 탄신일(5일)에 푸미폰 국왕은 침묵했다. 62년간의 재위 기간 중 매년 생일 전날 해왔던 대국민 연설을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했다. 예년과 달리 국왕 자리엔 '노란 방석'만 놓여졌다. 와질라롱콘 왕세자는 4일 국왕을 대신해 라디오 연설을 하면서 "부왕은 식도감염으로 음식물 섭취나 대화가 어렵지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푸미폰 국왕이 해외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가 정치판을 원격 조종하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인가. 중앙SUNDAY가 태국 정국의 깊은 속내를 해부했다.

푸미폰 태국 국왕(왼쪽)이 1999년 12월 5일 방콕 왕궁 발코니에서 와질라롱콘 왕자(가운데), 시리킷 왕비와 함께 시민들로부터 72회 생일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영화 ‘왕과 나’는 19세기 말 시암(태국)의 뭉꿋 국왕(라마 4세)을 소재로 세 차례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끈 작품이다. 1956년 찍은 ‘왕과 나’는 왕실 가정교사로 고용된 영국인 미망인이 문화적 갈등 속에서 왕(율 브리너)을 사랑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동양을 얕잡아보는 서구 우월주의에다 왕실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태국에선 상영 금지됐다. 당시 국왕은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 누구도 얼굴을 볼 수 없고 엎드려야 했다.

부인 39명, 자녀 82명을 둔 것으로 알려진 뭉꿋 국왕은 개혁·개방을 추진해 아들 쭐랄롱꼰 대왕(라마 5세:1868∼1910)의 도약을 가능케 했다. 대왕은 독립을 지키면서 노예제 폐지, 의무교육 실시, 운하·철도·도로 건설 등 근대화를 이뤄냈다. 한반도가 일제에 짓밟힐 때 그는 유럽을 순방하고 라이플(소총)과 산업용 기계를 자체 생산할 만큼 나라를 발전시킨 현군(賢君)이었다.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국왕은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다. 헌법·형법에는 국왕과 왕실을 모욕하면 중벌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태국인들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81·라마 9세)을 ‘살아 있는 부처’로 칭송하는 것은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재위 62년째인 그는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다. 60회 생일에 즈음해선 세 명의 ‘위대한 군주’에게만 붙여준 대왕(The Great) 칭호를 받았다.

푸미폰 국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전국 어디에나 국왕 사진이 붙어 있고 영화관에서 국왕 영상이 나오면 관객들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일어선다. 그는 소외계층에게 자애로운 후원자다. 정치적으로는 탁월한 위기관리자이자 사실상 최고통치자다. 경제적으로는 왕실 명의로 350억 달러(미 포브스지 8월 발표)의 재산을 가져 전 세계 국왕 중 최고 갑부다.

푸미폰 국왕은 재임 중 15차례의 군부 쿠데타를 겪었다. 그는 73년 10월 학생혁명 당시 군부 정권을 쫓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80년대 쁘렘 정권 당시에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두 차례나 주저앉혔다. 인도차이나 3국이 공산화된 70년대 중반엔 군복 차림으로 군 부대를 방문해 “태국이 적의 목표가 되고 있다”며 반공 노선을 주도했다. 당시 라오스에선 600년간 지속된 왕정이 붕괴됐다. 그의 절제된 말 한마디에 시대 흐름이 바뀌고 정권의 향방이 달라졌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탓일까. 푸미폰 국왕의 권위가 통하지 않는 조짐이 엿보인다. 국왕이 2년 전 퇴진시킨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세력은 군부 쿠데타를 겪고도 제1당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탁신은 부패 혐의로 2년형을 받고 해외 도피 중이지만 원격 조종을 통해 자신의 ‘최측근’인 사막 순타라웻, ‘매제’인 솜차이 웡사왓을 차례로 총리 자리에 앉혔다. 차기 총리 역시 ‘친척’인 차이싯 친나왓이 거론된다. 탁신은 태국과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 않은 두바이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탁신 성향의 군부와 야당,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초조한 표정이다. 방콕 국제공항을 장기간 점거한 보람도 없이 정권을 또다시 탁신계에 넘겨줄 판이다. 그렇다고 의회 해산과 총선거를 요구할 수도 없다. 선거만 하면 탁신계 정당에 패하기 때문이다.

‘푸미폰 이후는 없다’는 악성 루머도

탁신은 총리 재임 시절 신자유주의와 포퓰리즘 정책을 절묘하게 구사해 농민 지지층을 확보했다. 촌락당 100만 바트(약 4000만원) 지원, 농가 부채 3년 유예, 의료보험 전국 확대, 마약과의 전쟁 등으로 민심을 잡았다. 감세와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연 5∼7%로 끌어올리고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가능케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백마 탄 기사’다.

97년 제정된 신헌법에 따라 ‘소선거구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실시된 현실을 감안해 지역 정당들을 흡수하는 정계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2005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어 사상 처음 제1당으로만 내각을 구성했다. 탁신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이동통신업체 친(Shin)그룹의 지분 49.59%를 매각하면서 733억 바트(약 2조9000억원)를 받고도 세금 260억 바트를 면제받았다.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도 타오르고 있다.

반탁신 세력은 국왕에 대한 불경죄와 부패 청산을 탁신 제거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2004년 6월 탁신이 고위 공직자 특강에서 “헌법 밖에서 그에 반대하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의 명령을 직간접으로 따르지 말라”고 지시한 것을 문제 삼는다. 국왕을 겨냥한 불경 발언이라는 것이다. 반탁신 세력은 대도시 중산층과 군부·기득권층이 주류다. 외신들은 “푸미폰 국왕 이후를 겨냥한 지역·계층·이념 간 주도권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탁신이 입헌군주제를 무력화하고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같은 ‘1당 지배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는 주장도 잇따른다. 탁신이 과거 핀란드 방문 시 ‘공화제로 가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계기다. 국왕의 최측근 쁘렘 추밀원 의장은 2년 전 육사 생도 특강에서 군(軍)을 말(馬)에 빗대 “기수는 오고 가는 것이지만 말 주인은 항상 같다”며 국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2006년 국왕이 9·19 쿠데타를 즉각 승인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탁신은 표면상 국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해 왔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국왕과 국민밖에 없다” “귀국하면 국왕의 발 밑에 꿇어앉아 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푸미폰 국왕이 탁신 세력의 제거를 밀어붙이려고 한다면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 실제로 시리킷 왕비가 10월 말 반탁신 시위대의 부상자를 위문하자 외국 언론들은 ‘왕실이 시위를 후원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았다.

푸미폰 국왕의 최대 고민은 역시 후계 문제다. 외아들 와질라롱콘(55) 왕자를 왕세자로 지명했지만 그는 세 번 결혼한 경력에다 사생활이 깔끔하지 않아 부왕 같은 카리스마와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방콕 거리에선 요즘 짜끄리 왕조를 연 라마 1세(1782∼1809)가 즉위 전 어느 고승으로부터 들었던 예언이라며 다음과 같은 루머가 나돈다. “왕은 되겠지만 왕조는 9대(代)에서 끝나겠다.” 누군가 ‘라마 10세’가 될 왕세자를 헐뜯기 위해 악의적으로 루머를 유포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탁신 세력들은 탁신계 정당을 견제하기 위해 하원 의석의 절반 정도를 선출직이 아닌 지명직으로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는다. 선거를 통해선 탁신의 존재를 지울 수 없음을 자복하는 꼴이다. 국왕의 권위와 선거의 위력 사이에서 태국 정국은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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