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금융정보 취급자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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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월부터 시행될 새 증권거래법에 맞는 시행령.규칙 개정안이 나왔다.증권사 설립요건을 완화해 경쟁을 촉진하고 소수주주권 강화로 투자자보호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시장에서의 규제와 경쟁은 상충하는 면이 있다.규제가 너무 엄격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쟁이 지나치면 시장의 품위(integrity)를 보전할 수 없게 된다.최근 세계적인 추세는 시장의 품위나 투자자보호보다 경쟁에 의한 효율

성 향상쪽으로 기울고 있다.투자자보호기금등 각종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경쟁이야말로 태만하거나 지나치게 모험적인 경영자를 추방하고 비효율적인 증권사를 도태시켜 시장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자,특히 개인투자자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투자판단은 투자자 책임'이라고 할 때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는 가능한 한 완전하고 정확함을 전제로 한다.루머가 난무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시가 의무화된 정보는

1백% 믿을 수 있어야 한다.가령 장부상의 재고가 얼마고 경상이익이 얼마라면 틀림이 없어야 한다.그런데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비자금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터져 나온 한보사건은 이런 믿음을 여지없이 짓뭉개 버렸다.그 많은 돈이 뇌물로

흘러 갔다면 장부상 어딘가 허수들이 늘비하다는 말이 된다.주가수익비율(PER)도 의미가 없고 장기투자 권유는 허공을 맴돌 수밖에 없다.

양심선언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상장기업은 주주에게 재산상태와 경영성과를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중요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기면 사기행위나 다름없다.이익이 줄면 감가상각방법부터 바꿀 생각을 하는 기업에 뛰어난 경쟁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증권사 기업분석담당자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회계사.변호사들도 잠을 설치지 않으려면 더 꼼꼼해져야 할 것이다.굳이 직업윤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내외 수많은 투자자들이 분석.감사.심사 자료를 믿고 귀중한 재산을 투자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은행.증권감독원도 할 일이 있다.가령 주식평가손.외환차손등을 손익에 반영하지 않는 것이 기업을 도와 주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는 어리석은 부모'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손실이 커져 혹 대외신용이 떨어진다

한들 한 해에 국한될 일이다.그러나'이익조작'으로 인해 해외투자가들이 갖게 될 국내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불신은 몇 년이 가도 씻기 어려울 것이다.공시정보의 생산.배포에 관련된 이들은 투자자가 있기에 돈벌이가 있음을 깨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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