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로.융세父子 고국서 잇따른 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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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태어난지 2년만에 쫓기듯 고국을 떠난 부모와 함께 낯선 땅으로 향한 소년.9년만에 부모의 손을 잡고 다시 찾은 조국은 부모를 차디찬 감방으로 내몰고 11세 소년을 외톨이로 만들었다.그리고 소년은 마흔이 넘은 중년이 될 때까지 한번 도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분단과 이데올로기가 낳은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프랑스 거주작가 이융세(41).이름은 낯설지만 동베를린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문자추상'의 대가 고암 이응로화백(1904~89)의 아들이라는 배경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그 아버지와 아들의 전시회가 잇따라 열린다.3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국을 찾은 적은 없지만 서울사람보다 더 확실한 표준어를 구사할 정도로우리 말.우리 문화를 잊지 않은 이 작가가 11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 현대 (02-734-61 11)에서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연다. 李씨는 김환기.문신.이응로등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한국작가들이모두 거쳤던 프랑스의 권위있는 미술공모전 살롱 줴쥐아 단체전에출품하는등 프랑스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다.어머니 박인경씨와 함께 한국을 찾은 이씨는“고국에서의 첫 전시라 무척 흥분된다”면서“앞으로 자주 찾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를 마치고 조각작업에 열중하다 다시 평면 작업으로 돌아온 82년 작업부터 근작까지를 소개하고 있다.세월로 갈라진 나무의 표면을 보는듯 입체감이 느껴지는 李씨의 작업은 아버지 고암의 프랑스 초기작 을 닮아 있다. 나무판 겉을 칼로 새기고 이를 물묻힌 종이로 떠낸 화면을만들어 이 위에 구김이 심한 종이를 콜라주한 방식은 새롭지만 겉모습은 비정형의 형상이 부조로 표현된 고암의 60년대초 작업들과 유사한 인상을 준다. 이 전시에 이어 25일부터 갤러리 현대와 가나아트숍 기획전시장(02-734-1020) 두곳에서는 고암의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갤러리 현대에서는.고암 이응로의 문자추상 1960~80'이라는 이름으로 미공개 작품 60여점을 선보이고, 가나화랑은.문자와 인간형상'을 주제로 독일.프랑스에 소장돼 있던 고암의 조각작품 25점과 판화 50여점을 보여준다. 지난 94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고암 이응로전'이 고암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전시였다면 이번 두 전시는 고암의 원숙기를 집중적으로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고암의 문자추상은 콜라주 문자추상과 서예적 문자추상.구성적 문자추상의 세가지 양식으로 구분된다.60년에서 65년까지 계속된 콜라주 문자추상은 캔버스 위에 신문이나 잡지를 오려 붙여나가기 시작해 곧 신문 대신 한지를 이용한 작업으로 바뀐다.이때는 기호나 문자가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70년대 초반까지의 서예적 문자추상은 고암의 작품세계가 가장잘 드러나 있다. 이번 서울전에는 국내 처음 초대전 당시 전시된 작품을 공개한다.화선지를 붙인 캔버스 위에 수묵과 물감으로 그린 작품으로 콜라주 작업의 두터운 질감이 사라지고 수묵의 농도로 깊이를 표현하고 있다. 70년에서 80년까지의 구성적 문자추상에 등장하는 기호의 형상들은 한글 자모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보다 기하학적 양식으로변한 고암의 작업양식이 한자보다 기하학적인 한글의 형태에 관심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안혜리 기자〉 고암의 프랑스 유학 초기작을 떠올리게 하는 이융세의.석양'. 94×202㎝. .군상'연작이 시작되기 직전 기하학적 형상과 이를 감싸는 윤곽선이 특징인 고암의 78년作 .문자추상'.1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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