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은행장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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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의 은행가들이 성공과 실패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람은 영국 출신으로 18세기초 프랑스에서 활약한 존 로라는 은행가다.은행이 과연 돈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명백히 보여준 것도 그였고,은행가들을 만지는 물건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마이더스왕처럼 생각하게 한 것도 그였다. 어떤 결투에서의 부당한 승리로 살인죄에 몰리게 된 로는 어쩔수 없이 프랑스로 도망친다.천성적인 도박솜씨로 한 권력자와 가까워진 그는 권력자를 이용해 왕실에 접근,토지은행을 설립한다.국가의 토지를 담보로 은행권을 발행하고 이를 대 출해주는 은행이다..왕립은행'이란 명칭까지 얻어 남발한 은행권은 무제한 정부에 대출되고,정부는 부채와 경비 지출을 위해 은행권을 마구 뿌리고,은행권을 가진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경화(硬貨)로 바꿔 해외로 밀반출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결국 경화가 바닥나자 1720년 7월 수많은 군중이 은행에 몰려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15명이 압사했다고 전한다.설립된지 4년만의 일이다. 지금도 프랑스에서 로라는 인물은 사람들의 재산을 파괴하고,경기를 침체시키고,무엇보다 은행과 은행업무에 관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혹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치부하고 있다.하지만 그가 만약 은행을 설립하는데서 그쳤다면 은행의 역사에 얼마쯤 공헌한 인물로 기록될 수도 있었으리란 점이 그가 남긴 조그마한.성공의 교훈'이다.마구잡이로 대출해주는 데만 열을 올리지 않았던들 대출금의 이자만으로도 당시 프랑스의 경제를 살리는데 기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오늘날에는 설혹 개인은행이라도 은행장 마음대로 거액을 대출해줄 수 없도록 돼 있다.대출사고에 관한 모든 책임은 은행장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나라의 은행장들은 마치 제돈 쓰듯 달라는대로 준다.문제가 생기면 한 결같이 외압은 없었다는 강변이니 제 은행도 아니면서 로에 버금가는 권한을행사하는 셈이다.그만큼.막강한 권한'을 가졌기에 한보사건으로 은행장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소환되는 와중에서도 후임 은행장 자리를 노리는 인사들의 로비가 치열하 다고 봐야할까.아마도.현대의 마이더스왕'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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