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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5-No 운동’으로 간 질환자 22% 줄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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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SK에너지 울산공장 안전환경보건팀이 26일 한 식당에서 회식을 시작하며 “5-No”(원샷·폭탄주 등 술을 강제로 마시게 하는 다섯 가지를 거부한다는 의미)를 외치고 있다.

27일 울산 장생포동의 한 복국집에서 벌어진 SK에너지 울산공장 안전환경보건팀의 부서 회식. 작업복 차림의 10여 명이 빙 둘러앉아 잡담을 나누느라 어수선하다. 주거니 받거니 각각의 소주잔이 찰 때쯤 좌장으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일어나 건배를 제안했다.

“고생 많았다. 연말이니 실수가 없도록 한번씩 더 챙기자….”
“위하여!”가 나올 타이밍인데 엉뚱한 구호가 튀어나왔다.
“112.”

좌중이 일제히 다섯 손가락을 좍 펴 앞으로 내밀며 장단 맞춰 합창했다.
“오, 노!”

취재기자 곁에 앉아 있던 부서 직원 이성호(35)씨가 정체 모를 숫자와 탄성의 의미를 설명해 줬다.

“112는 1가지 술로, 1차에서 끝내고, 시간은 2시간 이내로 하자는 다짐이고, ‘오, 노!’는 ‘5-No’ 즉 강제로 과음하게 만드는 5가지를 하지 말자는 다짐이지요. 원샷, 잔 돌리기, 강권, 폭탄주, 2차 술자리로 끌고 가지 말라는 거죠.”

SK에너지 울산공장 임직원들이 4월 1일 시작한 ‘소주(少酒·술을 줄이자)운동’의 행동강령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분위기가 익어 가면서 달라진 음주문화가 화제에 오르자 누구랄 것도 없이 엄지를 치켜들어 가며 끼어들었다.

“1차만 하니까 이튿날 얼굴 색깔부터 달라지더라.”(황범수 대리·43)
“회식 시작 때의 구호를 상기시키면 머쓱해져 더 강권하는 폭군이 없게 됐죠.”(최중권 대리·43)
“합법적(?)으로 2차에서 빠질 버팀목이 생겼어요.”(전덕진 과장·46)
“1차만으로 끝내니 자정을 넘기던 귀가 시간이 오후 8시30분쯤으로 빨라졌어요. 취기가 남아 있으면 마누라하고 울산대공원 한 바퀴 산책하면 말끔히 깨 잠자리에 들 수 있죠. 집에서 정말 좋아해요.”(김원근 대리·47)

“처음 한동안은 술잔이 안 돌아 어색했는데 익숙해지니까 유머·재치 넘치는 화젯거리가 더 풍부해지더라고요.”(박지희 사원·34)

“회식비가 훨씬 절감됐어요. 강제로 권하면 하는 수 없이 받아서 몰래 식탁 밑에 버리곤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유재만 대리·43)

“자기 주장 강한 젊은 사람들이 술자리가 싫다는 이유로 아예 회식 자리에 빠져 버리기 일쑤였는데, 요새는 거의 100% 참석입니다.”(오경찬 부장·55)

SK에너지 울산공장 사원들이 ‘술 없는 날’인 7일(매월 첫째 금요일) 출근길 동료들에게 절주 슬로건이 담긴 안내문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SK에너지 제공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시작한 이날 회식은 오후 8시쯤 끝났다. 처음 받은 잔을 그대로 남겨둔 채 일어서는 사람, 혈색이 불그스레해진 사람, 끼리끼리 2차를 떠나는 사람…. 가지각색이었지만 얼굴과 목소리엔 하나같이 활기가 돌았다.

소주 프로그램을 반기는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다. 9월 SK에너지 울산공장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소주 프로그램이 회사의 음주문화와 개인 건강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89·7%나 됐다.

폭음과 2차 회식 크게 줄어

SK에너지 울산공장 임직원의 건강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보건센터(사내 간이병원)는 “알코올성 간 질환자가 소주 프로그램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479명에서 372명으로 22%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시작 직전인 3월 말과 9월 말 감마GTP 78U/L 이상인 사람의 숫자를 비교한 결과다.

같은 기간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음주량도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6개월 사이에 폭음률(한 번에 소주 1병 이상)이 79.2%에서 76.6%로 2.6%포인트 줄었다. 울산 시민 전체의 음주율이 1년 전보다 5.9%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2차를 가는 비율(두 번 술을 마실 때 한 번 이상 2차를 가는 사람)이 37.4%에서 20.3%로 17.1%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최근 3개월간 가족으로부터 절주하라는 권고
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율도 68%에서 50.1%로 감소했다.

SK에너지 울산공장은 올해를 절주 원년으로 선포하고 4월 초부터 ‘소주 캠페인→교육 및 홍보→실천과제 수행→성과 측정→평가 및 포상’의 유기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월 첫째 금요일을 ‘술 없는 날’로 정해 아침 출근길부터 정문을 비롯한 곳곳에서 112, 5-No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부채·스티커·컴퓨터 마우스받침대·안내문 등의 홍보물을 나눠 준다. 이날은 최태원 회장이 방문해도 회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여태 회식 때마다 제가 먼저 잘 때가 많았는데…이젠 함께 손잡고 잘 수 있겠네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에 나의 건강이 가족의 행복임을 느낀다.”

이런 내용의 사원 절주 실천 사례가 담긴 안전환경보건 편지가 수시로 인쇄물·전자메일로 사원들에게 전달되고 외부 전문가 강연이 열린다. 연말에는 건강검진 결과 알코올성 간질환자 숫자가 가장 많이 줄어든 부서를 뽑아 건강보조식품 등의 상품도 준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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