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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어려울수록 윤리경영이 정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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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도 결국 시스템과 윤리 문제로 발생한 겁니다. 공신력 있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되자 금융회사들이 빌려줘선 안 될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리스크까지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어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한 것 아닙니까?”

한국의 CEO를 말한다⑩|이 달의 패널 -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금융위기의 밑바닥에 근본적으로 도덕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회사들은 제조업을 도와주고 제조업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공유해야 하는데, 금융업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는 바람에 필연적으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부회장은 ‘윤리경영의 전도사’로 통한다. “윤리경영을 한 뒤로 신세계의 실적이 굉장히 좋아졌는데, 최소한 그 절반은 윤리경영 덕”이라고 강조했다.

“인력의 질도 높아졌습니다. 양질의 신입사원들이 들어왔기 때문이죠. 신세계에 입사하려는 사람 중 지원 동기로 ‘윤리경영이 내 이상과 맞는다’고 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이란 믿음은 신세계의 보이지 않는 자산입니다.”

신세계 측은 지원자 중 3분의 1 이상이 윤리경영 취지에 공감해 지원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윤리의식이 높은 사람을 채용하면 전체 직원들의 윤리적 마인드가 높아진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싼 값에 인수한 데도 윤리경영이 한몫했다고 구 부회장은 들려줬다. 이 인수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당시 월마트 측은 은밀하게 16개의 자체 매장을 넘길 만한 기업을 물색했다. 마침내 신세계를 낙점했다. 신세계 계열 이마트는 수의계약으로 월마트코리아의 지분을 100% 인수하고 고용도 100% 승계했다.

“종업원 고용 승계는 물론 협력사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윤리경영을 하는 신세계가 좋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랜드가 인수한 까르푸처럼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면 월마트로서는 몇천억 원은 더 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시간도 많이 안 걸렸어요. 윤리경영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줄 뿐더러 이렇게 신뢰란 자산을 축적해 줍니다.”

구 부회장은 1980년대 중반 삼성물산 도쿄 지사에 근무했다. 이때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그의 경영 노하우로 내장됐다. 그때 가장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점심값을 각자 내는 문화였다. 심지어 자기 몫을 정확히 알기 위해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 그가 삼성에 입사했을 당시 이 회사의 생활수칙 1호도 ‘자기 몫은 자기가 낸다’였다.

그러나 그 시절 누구도 이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99년 신세계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한 그는 ‘신세계 페이’를 도입했다. 윤리강령도 만들었다. 신세계 페이란 협력업체 사람 등과 식사할 때 회사 영업비로 자기 밥값을 내도록 한 제도다. 자기 몫은 자기가 낸다는 수칙을 근 30년 만에 시행한 것이다.

유통업이란 업종 특성상 신세계는 협력업체 직원들과의 접촉이 잦다. ‘갑’인 신세계가 접대를 안 받는다고 하니 ‘을’ 입장의 협력업체들이 부담스러워했다. 내부에서도 불평이 쏟아졌다. 해마다 여는 워크숍에서 임원들이 윤리강령을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협력업체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경쟁사에 협력업체를 빼앗기게 생겼다는 것이 구실이었다. 그는 그런 문화를 바꿔 보려고 윤리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대신 협력업체와의 골프 모임을 먼저 주선하고 그린피는 각자 내도록 하라고 제안했다.

“이제 협력업체들도 신세계 페이를 안 지키면 피차 불이익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편해졌다는 얘기도 합니다. 그러기까지 몇 년이 걸렸어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직원들끼리 밥을 먹으러 가도 상사는 각자 내느니 자기가 내는 게 편합니다. 문화적으로 우리는 아무래도 어색한 면이 있어요.”

신세계 페이를 선포하자 직원들 사이에서 비용을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빚어졌다. 그런데 막상 시행해 보니 첫 해에 실제로 비용이 줄어들었다. 접대비 명목으로 개인적으로 쓴 비용이 빠졌기 때문이었다. 남은 비용을 직원 수로 나눠 신세계 페이 장려금 명목으로 전 직원에게 똑같이 지급했다.

의리와 인화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도 도입했다. 검수자겿퓔탔?간 교대 근무 등 체크 시스템도 만들었다. 도덕적인 우위가 기업의 경쟁력도 높여줄까? 신세계 케이스를 전 업종, 기업 전반에 일반화할 수 있을까? 80년대 일제 전기밥솥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구 부회장이 당시 몸담고 있던 삼성전자가 자회사를 만들어 일본 업체와 손잡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밥솥을 생산했다. 그런데 비싼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을 하는데도 가격이 국산 밥솥보다 비싸지 않았다. 국내 경쟁사들의 원가가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밥솥을 팔던 대기업들은 오너의 친인척이 하는 회사에서 물건을 받아다 자기 브랜드로 팔았다.

담당 직원으로서는 제조사에 생산 원가를 낮추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대기업 자재 파트는 혈연, 지연, 학연 등 오너의 연고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연고주의, 온정주의가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다. 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매 담당 직원이 1억~2억 원의 뇌물을 챙기면 회사는 그 수십 배, 수백 배의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구 부회장은 지금처럼 전반적인 기업 환경이 어려울수록 윤리경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리경영을 하는 목적 자체가 낭비적인 요소를 없애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겁니다. 그러니 어려울수록 윤리경영에 충실해야죠.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은 사실상 동의어입니다. 어려울 때 서로 공감하고 고통을 공유하려면 결국 투명해져야 합니다. 종업원이나 협력업체에 희생을 요구하면서 경영진이 자신의 이익은 지키려 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투명경영 하면 거품 안 생깁니다”

구학서 부회장에게 배우는 윤리 경영

1. 오너와 CEO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오너와 CEO가 솔선수범해 실천해야 윤리경영이 성공할 수 있다. 오너와 CEO가 윤리적이지 않은 회사는 윤리강령을 만들어 봤자 공염불이다.

2. 윤리경영은 스스로 채우는 족쇄다

윤리경영을 시작하면 작은 문제가 생겨도 윤리경영을 한다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미디어가 들이대는 잣대도 더 엄격하다.

3. 윤리경영은 보상을 돌려준다

윤리경영을 하면 비용이 절감돼 실적이 좋아진다.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지원하는 인력의 질도 높아진다. 윤리경영은 글로벌 경쟁력이다. 가장 윤리적인 것이 가장 강하다.

신세계는 비자금이 없는 회사다. 건설 자회사(신세계건설)도 있지만 일절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는다. 직원들의 투서도 없다. 윤리경영 덕에 투서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너를 비롯해 경영진이 법에 어긋나는 지시를 하지 않으니까 직원들에게 요구할 건 요구하고 잘못하면 해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회사에 문제가 있다면 잘못한 직원이 물고 늘어지겠죠. 투서도 하고.”

구 부회장은 기업 정보의 공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기술 등 기밀에 해당하는 것 말고는 전면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투명하게 공개하면 실상이 왜곡될 가능성도 작아진다.

“사장단에 연말 결산 때 실적을 보수적으로 100% 반영하라고 강조합니다. 공개 못할 이유가 없어요. 더욱이 기업으로선 사실대로 공개하고 평가받는 게 필요합니다. 실적이 나쁜데도 주가가 좋다면 언젠가 빠지게 돼 있습니다. 그만큼이 거품이기 때문이죠.”

그는 또 환차손을 유보할 수 있도록 회계 기준을 바꾸는 것은 국제적인 회계 기준에 어긋날 뿐더러 자칫 우리나라 기업의 신용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 변동으로 차입금이 늘어났다면 그만큼을 영업 비용으로 처리하고 단기 순익에서 차감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구 부회장은 국내 기업도 윤리경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본다. 단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분수령이 금융실명제 실시다. 그 전에도 정치자금법은 있었지만 무기명으로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무기명 거래가 금융실명제 실시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는 윤리경영을 하려면 비윤리적 관행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뇌물 사건이 터진 몇몇 기업도 직원들에게는 윤리경영을 한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오너나 CEO가 윤리적이지 않으면 직원들이 과연 공감을 하겠습니까? 조직 안에서 통용되는 관행, 상사의 잘못은 밖에는 숨길 수 있어도 아랫사람들에게까지 감출 순 없어요. 결국 CEO가 의지적으로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윤리경영은 안 됩니다.”

그가 일본에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세무 공무원들이 세무 조사를 하러 나왔다. ‘한국식’으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여러 번 식사 자리를 제안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자기들이 일하는 방에 커피와 과일도 들여보내지 못하게 했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와 보리차만 청해 먹었다. 세무 조사가 끝나고 나서 엽서가 한 장 날아들었다.

“기관장에게서 5000엔 범위 안에서 저녁 식사를 접대받아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습니다. 단 다음에 역시 5000엔 범위 안에서 저희가 대접하는 조건입니다.”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당신들은 정말 세무 조사를 받는 회사 사람과 식사를 한 끼도 안 하느냐”고 물었다.

“일 년에 몇 건은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랬다가 문제가 되면 퇴직당하고 퇴직 연금도 못 받는 데다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는 겁니다. 왜 그런 바보 짓을 하겠느냐고 반문하더군요. 결국 지키는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임직원이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100% 인사에 반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런 일로 정말 해고당하는구나’하고 조심하게 되죠.”

일본 공무원은 급여 수준도 낮지 않은 편이다. 그런 만큼 퇴출당했을 때 잃는 게 크다. 그래서 구 부회장은 윤리경영에 필요한 사회적 환경 조성을 위해 공무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시 출신의 국장급 공무원이 같은 연배의 대기업 임원과 비교해 몇 분의 일 수준의 급여를 받는 우리의 현실에선 윤리경영이 뿌리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공무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봉급을 두 배로 올리든지 해서라도 민간 부문과 균형을 맞춰 줄 필요가 있습니다. 공무원 생활도 한 20년 했으면 자녀에게 필요한 교육도 시키고 사회적으로 품위도 유지할 수 있어야죠. 공무원처럼 힘 있는 조직이 소득이 낮아서는 윤리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이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은퇴하면 본업 같은 여생 살고 싶어요”

구 부회장의 좌우명은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논어>의 안연 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설파한 정명사상(正名思想)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기업에 적용하면 CEO는 CEO답고, 임원은 임원답고, 과장은 과장다워야 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과장이 과장다우면 어느 세월에 CEO가 되나? 신입사원에서 임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샐러리맨은 CEO를 꿈꾸면서 CEO 마인드로 일해야 하지 않을까?

“CEO가 되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건 좋아요. 그러나 CEO가 되기 위해 일찍부터 경력 관리를 해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CEO가 되는 건 운입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의외로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학교 때 잘나간 사람은 남들이 잘나가면 초조해하거나 불만을 품습니다. 그러다 회사를 떠나기도 하죠.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어도 일은 잘할 수 있어요. 과장이면 과장 업무에 충실하고, 부장이면 부장 노릇을 잘 하는 겁니다.”

과과부부임임사사. 과장일 땐 과장답게, 부장일 땐 부장답게 일하고 임원이 되고 나서 임원 일에 충실하다 보면 사장도 되는 것이고, 사장 역시 사장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젊은 날 CEO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재무통인 데다 성격상 스태프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CEO가 됐고, 99년부터 10년째 신세계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장수 CEO가 된 비결이 무엇일까? “CEO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CEO로 장수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좌우명대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운이죠. 90%가 운이었다고 봅니다.” 윤리경영을 펼치고 있는 건 그러나 그의 의지다. 마침 시류와 맞아떨어졌고, 오너와도 이런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IMF 체제 전부터 윤리경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괜찮은 회사도 적자가 나면 투명하게 적자 결산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은 적자 결산을 하지 않았어요. 적자 결산을 하면 국세청에서 세무 조사 나오고, 주가도 떨어졌기 때문이죠. 그러면 금융기관에서 그 해에 바로 차입금을 회수해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버텨낼 회사가 없어요. 당시 대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300%에 육박했습니다. 결국 분식회계를 해서 위기를 넘겼죠. 이런 관행이 한 10년 누적된 겁니다.”

구 부회장은 한국 유통 업계의 대표 CEO지만 유통 실무를 해 본 일이 없다. 그런 그가 유통업에 가장 어울리는 CEO란 말을 듣는 것은 업종의 핵심을 꿰뚫고 수익의 원천을 파악하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무통인 그는 투자의 효율을 챙겼다. IMF 체제 땐 제한된 재원을 부지를 싸게 많이 선점하는 데 집중 투자했다.

입지산업이라는 유통업의 핵심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부지를 고르는 데는 삼성그룹에서 비업무용 부동산을 관리하면서 키운 안목이 도움이 됐다.‘성공한 CEO 구학서’는 또 다른 본업을 구상하고 있다. “본업 같은 여생을 살고 싶습니다. 일본 작가 도몬 후유지(童門冬二)가

<생애청춘>이란 책에서 제안한 제2의 인생이죠.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은퇴 후 여생을 보람있게 마치고 싶어 뭘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 중입니다. 아름답고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희망사항이죠.”

글 이필재 편집위원·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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